처음 인지학 병원에 약속을 잡는 메일을 보낼 때, 나는 내가 왜 이 병원의 의사와 상담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자세히 적었다. 요는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전신마취를 해야하는 수술에 나는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내 몸을 전체의 관점으로 살필 수 있는 인지학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반드시 수술을 해야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싶다.' 는 내용이었다.
해당과의 행정을 담당하는 비서가 내가 이메일을 보낸지 20분만에 답을 주었다. (독일에서 이 속도 무엇?!!) 2주 후에 병원을 방문해달라고, 친절하게 어디로 와야한다는 설명을 덧붙여서이다. 모든 상황이 순조롭고 편안했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는 날은 무척 설레기까지 했다.

병원 규모가 워낙 커서 병원입구에서부터 해당 과까지 한참 걸어 도착하니, 예약시간보다 무려 5분이나 늦어있었다. 헐레벌떡 올라가니, 접수를 하는 곳 입구에 아무도 없고, 입원 병실을 확인하러 온 다른 환자 한 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곧 한 간호사가 지나갔는데, 일단 약속을 늦은 나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늦어서 미안한데...'라고 하자, 간호사는 웃으며, '괜찮아, 그런데 내가 이 분(먼저 온 입원 환자) 병실을 먼저 안내해주고 곧 올게.' 한다.
병원은 몇몇 간호사가 오가는 것 외에는 무척 조용하다고 느꼈는데, 지나가는 간호사마다 웃으면서, "할로" 하고 인사를 하며, "곧, 환자분을 위해서 누군가가 올거에요." 라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넨다. 어머, 어색하다. 이런 호의 (!?), 왠지 굉장히 안심이 되었다. 곧 이어, 아까 만난 간호사가 와서 내 예약 내용을 확인하더니, 해당과 접수를 담당하는 비서 (나와 이메일을 주고 받은 사람)에게 안내를 해준다.
비서는 내가 왔음을 확인하고, 내 1차 의사에게서 받은 진단서와 초음파 사진을 받은 후, 아직 의사가 앞서 진료하던 환자가 아직 안 끝났으니, 어항이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안내해주었다.

은은하게 펼쳐진 무지개색 라주어 페인팅 벽을 보면서, 발도르프 학교에서 행복했던 내 20대 시절이 생각났다. '그래, 내 몸의 이 녀석도 그 때 처음 발견되었더랬지. ' 여전히 많은 애정과 신뢰가 있는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 그럼에도 내 몸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인지학 병원에 와 있는 이 상황. 차근차근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돌아보고 나니, 시간이 무려 40분이나 지나 있었다. 아니, 좀 심하네? 혹시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독일에 살면서 가끔 내가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종종 인종차별 비슷한 상황이 생기거나, 괜히 오지랖 넓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이어폰을 끼고 다니곤 한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는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매일 만나는 유치원이나 학교 학부모들이 왠지 나보다 다른 사람들과 더 친한 것 같고 하면, 나는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느껴질 때가 있다.
이 현상은 얼마 전에 우리 동네 지하철역 바로 앞에 AfD(극우정당) 사무실이 생기고 나서 더 심해졌다. 우리 동네에도 극우주의자들이 있겠구나 생각나니, 겁이 났다. 내 존재 자체가 이 사회에 이물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날씨가 안 좋고 우울할 때는 이렇게 내가 조금씩 지워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좌절감이 생긴다.
가끔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여성들에게 "너무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것 아니야?" (내 남편조차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그 말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래, 나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뭐! 근데 그건 '의식'에 사로 잡힌 게아니고, 그냥 '피해'에 사로 잡힌 거야.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여자라서!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거나, 간접적인 피해를 당했거나, 아니면 피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거나, 이 모든 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피해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과는 단 둘이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으며, 밤늦게 외진 곳을 걸을 때는 계속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 게 피해가 아니라면 뭐냔 말이다.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도 비슷한 '피해'를 키운다. 극우주의자들, 극우자의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과 비슷한 논리로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저 사람을 대하는 것임에도 그게 힘들어서 사람답게 대해주지 않는 이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수록 나는 점점 옅어지는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 적을수록 나는 색깔을 찾는 것만 같다. 한 사람의 존재가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이런 것, 심각한 '피해'이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어쨌든 대기시간이 길어지니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비서가 날 잊은 건가? 내가 뭘 잘못 알아 들은 건가? 그래도 내가 완전 눈에 띄는 동양인인데, 날 잊을리가.' 이런 쓸데 "있는"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시계를 보고 있을 때, 의사가 다가 온다.
안녕하세요. 프라우 이, 저는 당신의 담당의사 프라우 베커 입니다.
아, 날 잊지 않았구나. 나 지워지지 않았구나.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