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앞 노숙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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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앞 노숙자 청년이 보이지 않는다.

잘 있겠지?

오인제오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하는 곳은 베를린의 쇼핑 거리로 유명한 쿠담거리 (Kurfürstendamm)에 위치해 있다. '나 잡아 잡수쇼.' 하며 쇼윈도에 물건들이 적나라하게 널려 있는 그곳을 매일 출퇴근을 위해 10분씩 두 번을 걸어다녀야 한다. 

분단 시절에는 쿠담의 카페에  다다 예술가들이 모여 작당모의를 한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부서진 교회'로 유명한 '카이저 빌헬름 교회'나 동물원 등이 가깝고, 쇼핑할 곳이 많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실상은 더 화려한 건물로 발돋움 하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건물들 천지, 사방이 공사판이라 트럭과 공사차량이 매일 오가는 살벌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노숙자들이다. 

규칙적으로 이 곳에 오다보니, 같은 곳에 늘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이체 방크 앞, 손이 부어 있던 청년

-이 청년은 손이 퉁퉁 부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장갑을 하나 꼭 선물하고 싶은 청년이다. 많이 얼었다 녹은 것처럼 손이 많이 상해 있는데, 그 손으로 종이컵을 들고 은행에 오는 손님에게 문을 열어준다. "할로!", "숀탁노흐(좋은 하루 보내)" 라고 인사를 하지만, 결코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루는 날이 너무 추운데, 그러고 있길래 자꾸 그 퉁퉁 부은 손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주며, 혼잣말로 '이 돈으로 술 사먹지 말고, 약 사먹지 말고, 꼭 따뜻한 거 사 먹어.' 하고 왔다. 

<도이체 방크는 무기 제조업자에게 돈을 투자해서 중동 지역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나쁜 평가가 있다. >


2) 록시땅 앞, 도 닦는 것 같은 아줌마

- 이 아줌마는 한 눈에 보면 노숙자이거나 구걸하는 사람인 줄 알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차림새가 너무 깔끔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다. 늘 청바지를 입고, 까만 백팩 하나를 옆에 두고, 가부좌를 틀고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서서 서성이기도 하는데, 늘 앞에는 종이컵을 두고 있다는 것이 내가 이 분을 판단하는 근거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이 분은 대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길래. 


3) DM 앞, 개랑 운동하는 아저씨

-이 아저씨는 늘 규칙적인 루틴을 가지고 사는 듯 하다. 뭔가 자기만의 생활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을 것 같으며, 건강한 삶의 비법이 있을 것만 같다.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데,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늘 개와 함께 공놀이를 하며, 개를 운동시키고, 운동 시키는 와중에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눈인사를 한다. 외모는 지저분해보이지만, 굉장히 건강한 신체를 가진 듯 하다. 개를 늘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4) 리들 앞, 푯말을 든 아줌마

-이 아줌마는 가장 마음에 쓰이는 아줌마 중 한 명이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고, 푯말을 들고 가족과 아이가 있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으로 어필을 한다. 집시의 느낌이 있고, 표정이 너무나도 어둡고 절박하다. 나는 특히 아이가 있다며 구걸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가끔은 아이를 그렇게 이용해서 화가 나기도 하는데, 왠지 이 아줌마는 정말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리들에서 장을 보고 나오며 동전을 주고, 눈을 맞추고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가슴이 아팠다. 


5) 에데카 앞, 선해 보이는 청년

이 청년이 어찌보면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내가 일 하는  사무실 바로 앞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청년인데, 너무도 눈빛이 선해서 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기 때문이다.

12월 경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 되기 바로 직전 아주 추운 날이 하루 있었다. 매일 나를 보면, "할로, 구텐 모르겐" 이라고 인사하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바쁜 척 하면서 지나 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매일 듣던 그 인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슬쩍 곁눈질 해서 보니, 이 청년이 반쯤 쓰러져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다 보니, 왠지 인기척이 너무 없어서 '혹시, 죽었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깨워야 할까, 아니면 잠든 건가. 하지만 이 시간에는 한번도 잠든 걸 본적이 없는데, 이렇게 추운데 저렇게 자다가 진짜 죽으면 어떡하지? 깨워야 하나? 깨웠는데 자는 거 방해 했다고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엄청 걱정을 하느라 오전 내내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뭘 살 것도 있고 해서 잠깐 내려가보았다. 

다행히! 청년은 에데카 직원이 준 차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나 혼자 마음 졸인 거긴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에 처음으로 정면으로 얼굴을 보고 씨익 웃어주고 오며, 잔돈을 건네주고 왔다. 그랬더니 '헤헤' 웃는 모습이 정말 선하다. 

될 수 있으면 노숙자에게 돈을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돈으로 술을 살지, 약을 살지 모르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노숙자들은 음식을 주는 것도 좋다고 말하기 때문에, 종종 내가 가진 음식을 주려고는 한다. 

이렇게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돈 말고 무엇을 주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서 온 친구가 준 핫팩 묶음이 생각났다. 마침 날도 추워지던 차여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날 핫팩을 들고 그 청년을 향해  당당히 걸어갔다. 내가 바쁜 척 하면서 지나갈 때는 인사도 잘하더니, 내가 너무 직진으로 걸어가니까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핫팩을 건네면서, 

두 유 노우 왓 잇 이즈?

라고 평소 쓰지도 않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아마, 영어를 몰라서인지 그냥 웃는다. 

나는 핫팩 포장지를 뜯고, 갑자기 엄청 쇼를 하기 시작했다. (아....미리 예상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핫팩을 모르니까..) 

투데이! 베리 콜드(몸을 떨며 춥다는 행동), (핫팩을 가리키며) 디스 이스 베리 핫 (몸이 사르를 녹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행동), 아, 노노, 낫 베리 핫, 디스 이스 웜." 

아무튼 갖은 바디랭귀지를 동원해가며 말을 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이 청년이 독일어로, 

"칼트, 칼트 (추워, 추워). (핫팩을 가리키며) 밤, 밤(따뜻해, 따뜻해)" 

한다. 아, 독일어를 더 잘 하는 구나. 

암튼 그렇게 해서 핫팩을 막 흔들어서 열이 나게 해준 다음에 손에 쥐어 주니 정말 좋아한다. 그 뒤부터 우리는 눈 마주치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엊그제 혼자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려고 물을 끓이다가 딱딱한 빵을 들고 먹던 그 친구가 생각이 나서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종이컵에 한국 현미 녹차를 담아서, 부드러운 크로아상과 함께 갖다 준적이 있는데, 그 때 이름을 물어볼 걸 후회가 된다. 

지난 주부터 그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일 것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는. 

<Homelessness is a capitalist crime, Galway 의 전봇대에 붙어 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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