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말을 할 때와 영어를 할 때의 성격차가 많이 컸었다.
한국인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할 때는 분명 밝고, 사교성 좋은 성격인데, 영어로 외국인과 말을 할 때면, 기가 죽고 어눌해 졌었다. 그래서 유학시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일은 항상 나를 불안하게 했고, 사람을 피하기도 했다. 언어의 장벽 위에,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가 나를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쁘고, 재밌고,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증명하라며 쪼아 댔고, 그 압박의 무게에 나의 자존감과 장점들이 밀려났다.
말실수를 해서 ‘이상한 동양인’ 딱지가 붙을 바에 차라리 입을 닫는 게 편하다 생각해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 침묵을 유지했고, 점점 주장과 색깔을 잃어갔다. 토론 동아리에 들어가서 분명 내 의견을 얘기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토론 공간을 벗어난 진짜 세상에서 정치 이야기 외에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늘 힘들었다. 특히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 나의 취미, 좋아하는 음식, 음악, 그리고 배경을 설명할 때는 나를 보여주기보다는 나를 변명하고 숨기는 데에 노력을 쏟았다.
졸업 후, 미국을 떠나고 대학교 1-2학년 까지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의 자기소개는 이렇게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자랐어 (I was born in South Korea but I was raised in the US).”
네이버 영어사전이 알려주는 ‘but’이란 단어의 뜻은 이렇다.
1. 그러나, 하지만 2. -데도 (불구하고), -지만
3.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 씀>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라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자랐으니 나의 한국인임을 용서해줄래? 그래, 딱 이런 꼴이었다.
대학교에 와서 미국인, 그리고 백인 다수 사회 밖의 문화속에 살며 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배우게 됐다. 이런 점진적 과정을 통해 3학년이 되고 나서야 나의 동양인 정체성을 더 이상 사회적 페널티로 보지 않게 됐다. 물론 나의 사회성은 인종의 문제 외에, 대체적인 내 자신에 대한 확신과 함께 자라기도 했다.
어찌됐던, 인간 대 인간으로, 평등한 선에 서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 편한 일이라니. 고작 몇 달 전에 깨달은 변화이기 때문에 아직도 많이 신이 난다. 대학교 1학년때의 룸메이트와 이에 대해 얘기할 때면, 룸메이트의 친구들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던 나의 장족의 발전에 서로 신기해하며 웃는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니, 나 자신을 변명없이 설명하는 게 이렇게 뿌듯한 일이라니. 왜 이제야 알게 됐나, 진작에 알았다면 지난 몇 년간 백명의 친구는 더 만들 수 있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뉴욕에 오기 전에 온 변화가 마냥 감사하다.
나의 사회적 불안의 결여를 축하하기 위한 나의 네번째 도전.
새로운 사람 많이 만나기
수업 중 옆에 앉은 사람, 지나가는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 거리에서 미술을 팔고 계신 예술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과목의 교수님들 까지. 말 걸었을 때, 최악의 케이스에 거절을 당하고 최고의 케이스에 새로운 친구를 만들겠지.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뛰는 불안감도 없어졌겠다, 일단은 커피한잔 하자고 해보자.
맨하튼,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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