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도전: 깨어있는 시민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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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도전: 깨어있는 시민 되기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

윤해원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내 기억에 남는 건: 

1. 유치원 시절 연습했던, 누가 나의 동의 없이 나를 만지려 할 때 리듬에 맞춰 "안돼요,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 하며 말하기

 2. 초등학생 보건시간에 봤던, 문구점 아저씨가 가게안에서 남자 아이를, 아빠의 친구라는 아저씨가 놀이터에서 여자아이를, 그리고 병원놀이 하자며 어린이들을 집에 데려온 남자가 그들을 추행하는 내용의 비디오.

3.  중, 고등학교 시절 남자 체육 선생님이 교과서에서 그대로  낭송해주신 인간의 생물학적 성장과 생식과정. 

4. 가톨릭 학교였던 만큼 예배당에서 열린 섹스는 악하다, 무조건 임신한다, 병 걸린다, 하지마라, 임신한다, 병 걸린다, 하지마라, 임신한다, 병 걸린다, 하지마라...의 세시간짜리 연설. 그리고 병든 생식기의 사진을 모아둔 파워포인트.

5. 초청 연사가 한 초콜릿을 반 전체에 돌리며 '너희 마음대로 해봐' 라고 한 후, 군데 군데 베어 먹히고, 녹고, 침 뭍은 잔여물을 보며, 어린 나이에 섹스를 한 여자는 이렇게 된다. 여학생분들 이렇게 되고 싶으신 가요? 남학생분들 이런 여자친구 사귀고 싶으신 가요? 하며 물었던 질문들. 

이런 없으니 만 못한 "교육" 경험 덕분에 나이 스물 셋에 아는 거라고는 인터넷을 보며 스스로 터득한 기본적인 피임 방법들 뿐이고, 그 마저도 이년 전쯤 검색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의 성에 대한 무지함이 성교육에 대한 내 관심을 키웠다. 그래서 뉴욕에 오기전, 미국에서 가장 큰 성교육 제공자인 플랜 패랜후드 운동가 협의회(Planned Parenthood Activist Council)입회를 신청했다. 

플랜 패랜후드는 비영리 생식 건강 관리 기관이며, 성교육 외에도 STD 검사 및 치료, 피임, 암 검진 및 예방, 낙태, 호르몬 요법, 불임 서비스 및 일반 건강 관리를 제공한다. 또, 저소득 가정에게 무료 또는 저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가 신청한 운동가 협의회는 탄원, 로비 활동, 법안 통과 및 이행 보장을 위한 활동과 선거 운동을 통해 시와 주의 선출직 공무원들이 의료 권리를 지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일을 한다. 

가톨릭 학교 학생시절, 플랜 패랜후드의 악함에 (=낙태의 악함) 대해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서인지, 협의회 교육을 받으러 가는 첫날, 반란을 일으키는 용사가 된 느낌이 들어 신나면서도 긴장됐다. 도착한 모임장소에는 30여명의 젊은 사람들이 있었다. 퇴근 후 또는 수업 후의 목요일 저녁. 지친하루 끝 휴식이 고플 시간인데도, 자신과 다른 시민들의 의료 권리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게 놀라웠다.

모임이 시작하자 교육자님께서 지난 1월, 플랜 패런후드 운동가 협의회가 10년 넘게 싸워온 생식 건강 법안이(Reproductive Health Act)이 뉴욕 주의 하원과 상원을 통과해 법이 되었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이 법안은 면허가 있는 의료 개업의 낙태 서비스 제공을 합법화하고, 여성의 건강 또는 생명이 위험하거나 태아가 생존할 수 없는 경우 임신 24 주 후 낙태를 합법화한다.) 

이 소식을 듣고 뿌듯하게 웃으며 하이 파이브를 하는 회원들을 보며 느꼈다. 직접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법안을,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여기 있구나. 뉴욕시 정부의 A 의원이 지난달 이 법안을 찬성했다, 뉴욕 주 상원의 B 의원의 사무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며 오가는 대화속에 나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다른 누구만큼 열심히 직장생활, 또 학교생활을 하고 그 긴 하루 끝에 세상을 바꾸는 열정을 가지신 그분들이 너무 빛나 보였다.

모든 싸움이 승리고 끝나는건 아니라는걸 안다. 긴 싸움에 지쳐 정치운동을 그만 하는 사람도 있고, 결국 법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법안도 많지만, 그래도 나도 내가 사는 세상의 법과 규정을 좀 더 배우고 이해 하고싶다. 어떤 정책에 관한 나의 의견을 형성하고 그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박식한 사람이 되고싶다.

그래서 나의 세번째 도전:

깨어있는 시민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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