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수업에 늦어 뛰어가는 길에 다음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를 들고 있는 동양인 남학생을 지나쳤다.
나는 자신을 혐오하는 동양인입니다 (I am a self-hating Asian).
벌써 수업에 3분이나 늦었지만, 포스터의 뜻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걸음을 되돌려 급히 그 학생의 이메일 주소를 받고, 다음에 꼭 한번 만나서 얘기 나누자는 약속을 하고서야 다시 수업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제, 드디어 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대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 문화에 공감할 수 없지만, 그저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한국 문화를 강요하고, 따르지 않을 시 핍박하는 한국인 커뮤니티에게 화가 난다고 했다. 또 생김새 때문에 중국학생 커뮤니티 가입을 강요를 받는 경험 이후로 동아시아인들을 피하게 됐고, 만약에 자신이 동양인의 모습이 아니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자신의 눈, 코, 입, 그리고 피부색깔마저 혐오하게 됐다고 했다.
자신은 동양인이 아니지만 사회에서 동양인 취급을 해 고통을 느끼는, 젠더 디스포리아 (gender dysphoria: 느껴지는 젠더 정체성과 보여지는 정체성의 괴리로 인한 고통)의 인종 버전인 인종 디스포리아를 경험한다 말했고, 자신의 자기 혐오를 고치려고 하거나 막는 사람들은 편협하고 무지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포스터를 드는 행위의 목표는 무엇이냐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의 고통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을 교육시키고,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지만 싸우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기 위한 일이라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큰 긍지를 갖고 있는 듯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배움을 받아드릴 각오로 시작한 그와의 대화는 나에게 의문만 심었다. 자기 혐오는 오직 외모를 향한 것인지 아님 한국의 음악, 언어, 음식을 포함한 문화도 모두 혐오하며 거부하는지, 또 왜 그는 자신을 핍박한 특정 소수의 가해자 커뮤니티를 혐오하고 그와 싸우는 대신, 피해자인 자신의 동양인 정체성 자체를 혐오하는지 궁금했다. 또 그가 지키는(?) '말하기 두려워하는 약자들'은 누구며, 정말 그들의 동의를 받고나서 수호신 역할을 하는지 알고싶었다.
이 질문들에 그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백인 다수의 사회에서 살았을 때는 한국 문화를 대표해 그에 대해 말하고 그와 연관되는게 괜찮았는데 동양인들과 있을 때만 그 문화와 연관되고 싶지 않다 했고, 한국음식도 가끔 즐기고 부모님과 한국어로 대화한다 말했다. 또 성형을 고려해봤지만 돈이 아깝고 그 정도로 멀리 가고 싶지 않아 그냥 자신의 동양인 정체성을 인정하고 평생 혐오하며 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분명 동양인 정체성보다 가해자 커뮤니티를 공격하는게 더 말이 되긴 하지만, ‘자기혐오’만큼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건 없다며,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계속 이 포스터를 사용할거라고 했다. 사실 자신은 관종끼가 있다며 웃는데 정말 혼란스러웠다.
중고등학교때의 나처럼,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사상에 갇혀 자신의 동양인 정체성을 혐오하게 된 동아시아 학생들이 이 포스터를 본다면 동양인 혐오의 관한 믿음을 굳히는 일이 일어날 거란 내 주장에도, 그는 만약 그렇더라도 이건 자신의 싸움이라며 내 의견을 차단했다. 자신의 주장과 다르지만 오직 더 큰 관심을 끌기 위해 오도하는 메시지를 사용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물론, 그가 동아시아인 커뮤니티에서 받아왔을 핍박의 무게를 의심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고, 자신의 메세지가 부를 결과를 모두 고려 해보기도 전에 무작정 시작한 '사회적 운동'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는 누구든 뭐든 할 수 있다는 뉴욕 정신의 잘못된 활용이며, 저번 글에서 내가 말한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의 잘못된 예다. 약자로서, 그리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한 싸움이 주는 만족감에 취해불분명함과 타협으로 이뤄진 논리로 ‘대모’ 를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모든 운동가들이 정의롭지는 않다는 걸 그와의 두시간의 대화 끝에 배웠다.
Hudson Yards,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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