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는 차단기와 함께 경비실과 방문세대에 호출 할 수 있는 인터폰이 있습니다. 캣시팅을 하러 가면 방문세대에 사람이 없으니 경비실로 통화를 시도하지요. 경비실에 연결되면 2가지를 물어봅니다. 방문한 세대의 동, 호수와 방문 목적인데요. 동, 호수는 예약 내역대로 말하면 되는데 방문목적... 이게 조금 머쓱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렇게 얘기 했어요.
"고양이 돌보러 왔어요!"
고양이를 돌보러 왔기때문에 고양이를 돌보러 왔다고 말을 했는데 무슨 머쓱한 상황이 생긴다는거지? 싶으시겠지만 놀랍게도 이 대답 때문에 거의 취조 비슷하게 질문 폭탄을 받았던 상황도 있었습니다. 매번 그렇진 않아도 꽤 자주 벌어진 상황이라 대답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어요.
제가 일 할때 대면하는 경비원분들의 95%가 중년,노년 남성입니다. 젊은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확률이 높고, 캣시터가 아직 보편화 된 직업이 아니기에 그게 뭔가 싶어서 이것 저것 더 물어보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뭐 그런 일이 다 있어요?' 혹은 '별 걸 다 하네' 와 같은 반응도 여러번 있었어요. 물론 흔쾌히 들여보내주신 분들이 훨씬 많지만 비웃음 섞인 말들에 괜히 위축되었답니다. 다른 사람의 직업을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이런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앞서더군요. 그래서 제가 바꾼 대답은
"청소하러 왔어요"
였습니다. 따지고보면 틀린 말은 아니에요.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방 바닥에 털이 많이 날리는 경우에는 청소기도 한 번씩 돌리거든요. 이렇게 대답을 바꾸고 나니 추가 질문 없이 차단기를 프리패스하는 비율이 훨씬 상승하였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젊은 사람이 그런 일을 해요? 대단하네~'하는 원하지도 않은 칭찬을 받는 상황이 생기면 마음이 복합적으로 불편해졌습니다. 청소일은 왜 '그런 일'로 치부되어야 하나, 젊은 사람이 청소일을 하면 왜 대견하다는 말을 들어야하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너무 꼬인건가 하는 자기검열까지.... 그리고 몇 마디 더 설명하는게 싫어서 내가 하는 일을 부정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민해봤어요.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듣기에도 한번에 납득 될만한 대답이 뭐가 있을까...? 마땅한 문장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SNS에서 어떤 글을 보게 됐어요. 내용인 즉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밥 없으면 못 사는 민족임. 어느정도냐면 인사할 때 무조건 밥 얘기함. 얼굴보면 제일 먼저하는 얘기가 밥 먹었어?이고 누가 걱정되면 밥은 먹고다니냐고 물어보고 헤어질때도 언제 밥 한번 먹자 하면서 헤어진다' 이런 비슷한 내용의 글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수정에 수정을 거쳐 현재 최종적으로 제가 하는 대답은 이렇답니다.
"고양이 밥 주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