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이 ‘아이돌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올랐다. 깔끔하게 톤 정리가 된 얼굴에 턱선을 강조해 주는 컨투어링. 정돈된 눈썹, 눈매를 깊고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아이 메이크업. 그리고 적당히 컬이 살아있는 헤어까지. 무대 위에서 엑소와 함께 춤을 추는 유재석은 말 그대로 ‘아이돌’이었다.
30년은 젊어보인다, 잘생겨졌다. 사람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이처럼 45세의 개그맨이 20대 초반의 아이돌 가수 9명 사이에서 위화감을 주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메이크업일 것이다.
남자 아이돌 메이크업은 그만큼 위대하다. 위대하기만 한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수의 뷰티 유튜버나 블로거들이 남자 아이돌의 메이크업 튜토리얼을 제공하는 것을 보면, 이미 그것은 단순한 ‘코스프레’의 정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 중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이들이 있다.
1) 엑소의 백현과 시우민
서가대(서울 가요 대전) 버건디 메이크업으로 한 때 수많은 튜토리얼을 양산한 아이돌 멤버가 바로 엑소의 백현이다. 짙은 블랙 아이라인과 붉은 섀도우의 조화로 섹시함을 부각했다. 주로 눈의 삼각존을 채우거나 언더라인을 짙게 그리는 식으로 메이크업을 연출한다.
시우민 역시 백현과 함께 메이크업으로 주목받는 멤버다. 마찬가지로 버건디 섀도우와 짙은 아이라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유의 눈매를 자연스럽게 살리는 음영 메이크업도 잘 소화해낸다.
2) 지코
LG 생활건강과 분쟁까지 빚었던 ‘지코 틴트’의 주인공이다. LG 생활건강의 한 브랜드에서 나온 립제품이 지코가 평소 연출하던 입술색과 비슷한 발색으로 주목을 받자 홍보 문구에 ‘지코’의 이름을 무단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도로 지코의 립 메이크업은 눈길을 끈다. 핫핑크도, 코랄도 모두 어울린다. 썬글라스 착용 시 립 메이크업에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참고할만하다.
3) 방탄소년단
요즘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 앨범 컨셉에 따라 다양한 메이크업을 선보인다. 버건디부터 차분한 그레이까지 수많은 색감을 선보이는데다가 멤버마다 눈모양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메이크업을 참고하기에 좋은 아이돌 그룹이다.
쌍꺼풀이 진하다면 정국, 눈두덩이 두껍다면 지민, 작고 쌍꺼풀이 없는 눈이라면 슈가의 메이크업을 참고하자. 뷰티 유튜버가 가장 많이 따라하는 남자 아이돌 그룹 중 하나이기때문에 메이크업 튜토리얼을 찾기도 쉬울 것이다.
남성성과 메이크업의
기묘한 상관관계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남자 아이돌의 화장은 너무 쉽게 폄훼되고, 놀림거리로 전락하곤 한다. 관련 기사에는 ‘여자 같다’ 혹은 ‘게이 같다’는 여성,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항상 댓글로 달린다. 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돌 스스로도 자신들이 화장을 한다는 사실에 당당하지 못하다.
힙합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랩몬스터는 아이돌 그룹 활동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는 비판이 있냐는 질문에
"왜 스모키 화장을 하느냐, 왜 방송에서 예쁜 척을 하느냐 등등. 순수성을 중시하고 남성성을 지닌 힙합의 관점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고 답한다. 남성성과 화장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길래.
숙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피부관리를 하고, 그 날의 화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다툰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은 ‘화장에 관심이 있는 남자’로 ‘오해’받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
백현은 팬들과 함께 한 생일파티 현장에서 아이라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은 비밀이에요’라고 넌지시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괜히 또 쟤가 메이크업에 관심이 있다, 이런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은 광희, 뉴이스트의 렌과 같은 멤버는 별종으로 취급받거나 놀림거리가 된다.
제국의 아이들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오피스 리얼리티’에서는 광희가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경악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오른 이들에게 ‘여자 같다’ 혹은 ‘게이 같다’는 혐오 표현으로 반응하는 것. 그리고 남자 아이돌이 실제로 화장을 하면서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혹은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남자 아이돌의 화장을 둘러싼 이 모든 일 속에서, 여성 혐오의 단면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화장은 곧 남성성의 훼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화장이 예의라면
그러나 사실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대부분의 남자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서장훈도, 김구라도, 이상민도, 박명수도, 모두 화장을 하고 방송에 등장한다. 톤 정리를 위해 베이스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그 위에 잡티나 흉터를 가리기 위해 컨실러를 덧칠한 상태로. 아마 뾰족한 콧대와 날렵한 턱선을 위해 컨투어링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입술이 너무 칙칙해서는 안되니 컬러감이 있는 립밤을 더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발색이 약한 틴트를 발랐을 수도 있다.
방송인에게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민낯으로 TV 화면에 등장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방송인에게 ‘화장은 일종의 예의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 문장은 방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매일 듣는 소리다. 특정 성별에게만은 예의이고, 또 다른 성별에게는 부끄러운 짓인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발전하면 '포인트 화이트닝 크림'의 마케팅 수단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의 '유두 색깔' 선호도 설문조사가 등장하게 된다. 미미박스는 유두나 사타구니를 밝혀준다는 미백 크림을 홍보하며 다음과 같은 남성의 코멘트를 덧붙인 광고를 페이지에 그대로 싣는다.
시커먼 유두, 남자들이 몰래 검은 콩이라고 해요. 그만큼 남자들이 안 좋아해요. 과히 보기 좋지 않아요. 핑크는 핫!한 색깔이에요. 핫핑크 좋아요!
이로써 여성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유두나 사타구니까지 메이크업 해야하고, 이것이 모두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예의' 따위로 포장되는 것이다. 남성을 위한 포인트 미백 크림은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이를 꼭 챙겨바르는 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 어떤 혐오 발언을 듣게 될 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의 뷰티를 ‘그루밍족’이니 하는 특별한 단어로 지칭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온스타일에서 10월 26일에 내보낸 남성 뷰티 예능 <립스틱 프린스>의 1차 티저를 보라. 그들이 티저와 함께 내세운 키워드는 바로 ‘화섹남’이다. 화장을 아는 섹시한 남자. 여자는 매일 강요받는, 심지어 유두에까지 강요받는 화장을 남자는 ‘알기만 해도’ 칭송받게 된다. 기본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대단히 칭찬 받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 누구에게든 화장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외모를 가꾸고 나오는 것’이 예의라면 누구보다 그 예의를 지켜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