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겨 스케이팅 팬이 영원히 고통 받는 이유

생각하다피겨 스케이팅

한국 피겨 스케이팅 팬이 영원히 고통 받는 이유

엠마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아름다운 고통의 시작

모든 것은 외가에서 지낸 어린 시절의 어느 밤, 엄마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티비 채널을 돌려보던 순간 시작됐다. 아마도 외가에서 잡히던 일본 방송 채널들 중 하나가 피겨 스케이팅을 보여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본어도 할 줄 모르거니와, 그 땐 그걸 피겨스케이팅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니 어떤 방송이었는지 기억할 리는 없다. 그나마 링크의 조명이 어두웠기 때문에 경기가 아니고 갈라쇼나 아이스쇼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것도 어쩌면 놀란 뇌가 후보정을 한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어두운 화면은 나에게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땅 위에선 절대 꿈꿀 수 없는 방식으로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

그로부터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익숙한 한국 채널에서 그 신비로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선수, ‘퀸’ 연아의 등장 덕분이었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는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은 외가에서 본 피겨스케이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다시 한 번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충격을 두 번이나 받았다면 이쯤에서 엄마를 졸라 집 근처의 아이스링크를 찾아가는 것도 퍽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피겨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거지. 그랬다면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좀 더 재미있는 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이미 내게 다른 건 몰라도 운동 선수가 될 소질은 약에 쓸래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피겨 선수 대신 피겨 덕후가 되었다. 이것은 긴 고통의 시작이었다.

익숙한 불공정

피겨를 좋아하는 일은 뜻밖에도 괴로웠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가 어처구니 없는 판정으로 김연아 선수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 금메달을 획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건 김연아 선수의 경력에 내내 벌어지던 불공정함의 절정 같은 것이었을 뿐, 난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07-2008 시즌에 김연아 선수는 직선 스텝 요소에서 레벨1을 받은 적이 있다. 직선 스텝은 레벨 1에서 4까지로 평가할 수 있는데 당시 그는 보통 레벨3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수행한 스텝의 레벨 하락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2008-2009 시즌에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 점프에 자꾸 어텐션(attention, 주의)이 붙었다. 모든 점프마다 자세히 정해진 도약과 착지의 방법이 있는데, 김연아 선수는 이를 플립 점프에서 정확히 구사하지 못하니, 심판들은 판정 시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의 점프는 활동 내내 거의 변하지 않았음에도 동일한 지적이 다시 없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2009-2010 시즌부터는 이런 식의 견제는 줄어들었지만, 경기 내용이 월등했는데도 점수 상으론 근소한 차이만 두어 그의 스케이팅을 폄하하고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따라서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쇼트 프로그램 점수가 김연아에 비해 고작 0.28점 낮았을 때, 피겨 스케이팅을 오랫동안 봐 온 팬들은 이미 이것이 노골적인 압박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다. 김연아 선수의 시니어 데뷔 후 장장 8년 동안 이어져 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윽고 쇼트 경기 다음날 진행된 프리 프로그램 경기에서 소트니코바는 그의 스케이팅 경력에서 받아본 일이 없는 (그 이후로도 받지 못한) 점수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가져갔다.

김연아 선수는 소란스러웠던 소치 올림픽을 뒤로 하고 언제나처럼 품위 있게 은퇴했다. 혹자는 김연아 선수가 없는 한국 피겨는 재미가 없으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피겨 팬들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피겨가 재미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전설적인 선배가 떠난 자리에서 꾸준히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후배 선수들 덕분이다. 매스컴에서는 박소연 선수와 최다빈 선수의 활약이 주로 다뤄져 두 선수가 유명하지만, 그들이 다는 아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최초로 피겨 전 종목 출전에 성공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선수는 왜 사과하지 않았을까

그러던 지난 3월 20일 다시 예전의 고통이 되살아났다.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임은수 선수가 경기 당일 워밍업 도중 함께 빙판 위에 있던 머라이어 벨 (이하 벨)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찍혀 왼쪽 종아리 근육을 부상당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는 여섯 명이 한 조로 묶여 치른다. 전체 순위는 각 선수의 점수를 갖고 매겨지기 때문에 조 배정은 경기 결과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다만, 실제 경기 시 각 조 사이에 정빙(빙상 정리)과 다음 조 선수들의 짧은 웜업이 이뤄진다. 경기 직전 뿐 아니라 경기 일정에 따라 당일에도 공식적인 연습 시간이 주어진다.

이 모든 연습 시간 동안 최대 여섯 명의 선수가 함께 빙판을 사용하게 되는데, 임은수 선수는 경기일 오전의 공식 연습 시간에 부상을 당했다. 여섯 명의 선수가 함께 움직이는데다 견제로서의 웜업 방해도 왕왕 일어나다 보니 충돌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고의성을 의심할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었다.

보통 웜업 방해는 가볍게 동선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등 자유로운 빙판 사용을 견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연아 선수가 겪었던 것처럼 일부러 점프 착지 지점을 지나가는 정도로 적극적인 경우에는 웜업 방해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스케이트를 신은 다른 선수를 방해하는 행동은 본인에게도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관련 보도 영상

그러나 사건을 담은 동영상 속에서 머라이어 벨 선수는 임은수 선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야를 여러 차례 확보했음에도, 임은수 선수의 뒤에서 접근해 스케이트를 신은 발을 뒤에서 앞으로 걷어차듯 움직였다. 더구나 임은수 선수는 링크 가장자리의 펜스에 거의 붙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술 더 떠 벨은 임은수 선수가 아픈 다리를 감싸 쥐고 빙판 위에 서 있는 동안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이 일은 벨이 임은수 선수와 같은 코치 아래서 훈련하는 동료이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심지어 전례가 있었다. 임은수 선수는 작년 4월 미국으로 훈련 장소를 옮긴 이래 1년간 벨과 함께 훈련해왔는데, 소속사인 올댓스포츠에 따르면 벨은 이전에도 임은수 선수에 대한 폭언과 괴롭힘으로 훈련 링크에서 주의를 받고 훈련 시간, 라커룸 사용 시간이 서로 분리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라파엘 아르투니안 코치는 이런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되려 벨에겐 고의가 없었다고 두둔해주기까지 했다. 애슐리 와그너, 아담 리폰 등 미국의 유명 피겨스케이터들도 이 의견에 동조했다.

역사 깊은 쏠림 현상

그리고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이것이 스포츠 팬이라면 어쩔 수 없이 시즌마다 감수해야 하는 흥분 상태의 분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이 피겨 변방국이라서 겪어야 하는 일이고, 훌륭한 경기를 보여주고도 핸디캡까지 감수해야 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진 팬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다른 빙상 종목에 비해 귀족적 색채가 짙다. 일단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갖추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심지어 운동 선수에게 예술성까지 요구하기 때문에, 발레나 춤을 배우면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도 그렇다. 빙상장이 많은 것도 선수 층을 두터이 하는데 도움이 된다. 자연스럽게 춥고 부유한 나라가 유리해지는 조건이다.

1908년 이래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에 걸렸던 메달 271개 중 51개가 미국에 갔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24개의 메달, 도핑문제로 개인 자격 참가만 허용됐던 평창 올림픽에서 딴 3개의 메달을 합해 총 53개를 땄다. 역대 메달 획득 10위 내에 북미와 러시아, 서북유럽 국가 뿐인 가운데, 90년대부터 국가적 지원을 쏟아 부은 일본이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빙상 종목에 강하면서 동시에 전통적 부국인 이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국제빙상연맹 내에 확보한 인적 네트워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심판진도 선수의 국적에 따라 채점에서 보이는 너그러움의 정도가 다른 것을 보면, 피겨 계의 강대국 선수에 대한 오랜 우대는 차라리 정해진 규칙보다 더 강력한 관례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다. 앞서 설명한 김연아 선수의 고초는, 국제빙상연맹이 이런 인간의 편파성을 재조정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없느니만 못한 연맹

한편 한국빙상연맹은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선수를 지원하기는커녕 보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작년 12월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차준환 선수와 김예림 선수가 출전했던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 참석한 한국 스태프는 선수 본인의 코치 1명씩이 전부였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한 시즌 동안 최상위권의 성적을 낸 선수만이 출전할 수 있는 큰 대회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에겐 부상을 관리할 전문 트레이너도, 대회 주최측과 연맹, 선수를 잇고 조율해 줄 팀 리더도 없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뿐만이 아니다. 선수들이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때는 컨디션 조절이 중요하므로 항공 경유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고, 또 기내 반입이 불가능한 스케이트를 수화물로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수화물 분실의 위험이 적은 항공사와 공항을 택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월 오마이뉴스에서는 한국빙상연맹이 대회 직전에야 저렴한 항공권을 발권하는 바람에 정작 선수는 활주로를 걸어 환승하거나, 공항에서 노숙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더욱 참담한 소식도 있었다. 피겨 국가대표들이 훈련하는 태릉 빙상장의 확보된 대관 시간이 통보 없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태릉의 환경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피겨 전용 빙상장이 아니기 때문에 빙질도 기온도 피겨에는 적합하지 않고, 이런 훈련 환경은 종목 특성상 나이대가 어린 선수들의 몸에 부상으로 남아 결국 선수 생명을 단축시킨다.

이런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김연아 선수가 피겨 전용링크를 지으려다 무산된 적도 있었다. 당시 연맹은 본래 연맹이 해야 할 일을 혼자 떠맡아서라도 환경을 개선해보려는 김연아 선수를 조금도 돕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빙상연맹이 피겨스케이팅에는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수많은 정황 중 일부만 나열한 것이다.

비록 마이너의 길이지만

한 때 한국의 3대 느님은 치느님, 유느님, 그리고 연느님이라고들 했다. 그간 일었던 비판의 물결에 ‘유느님’의 존재감이 흐려지고, 치킨은 홀로 ‘느님’으로 존재하기보다 맥주라는 좋은 친구와 함께 하게 된 뒤에도, ‘연느님’은 김연아 선수를 부르는 애칭으로 남아있다. 김연아 선수가 현역으로 활동할 때 한국 사회가 피겨 스케이팅에 쏟은 대단한 관심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실 피겨 스케이팅은 어디서도 인기 종목은 못 된다. 피겨 스케이팅에는 일순간 공의 향방으로 정해지는 통쾌한 순간도 없고, 폭발적인 스피드에서 오는 짜릿함도 없다. 빙판 위에는 한 번에 한 명, 혹은 (페어와 아이스댄스 경기의 경우) 두 명의 선수만이 올라가므로 뜨거운 부대낌 같은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데, 심지어 최종 순위를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 선수의 점수가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점수마저도 연기가 끝나고 즉각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판정과 집계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방금 연기를 마친 선수는 키스앤크라이 존에서 기다리는 동안 몸이 식어버리지 않도록 유니폼을 껴입곤 하며, 그나마도 ‘프로토콜’이라 불리는 자세한 채점표는 모든 경기가 종료된 다음에나 볼 수 있다. 그렇게 매겨진 점수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보통의 눈에는 선수가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연기들에 왜 천차만별의 점수가 매겨지는지를 굳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스포츠 팬들이 경기를 보면서 얻고 싶어하는 명백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서 피겨를 좋아하려면 전세계에 흩어진 주요 대회 개최지의 시차에 맞춰, 국내 중계권을 독점한 SBS가 중계는 않고 저작권만 주장하는 탓에 IP를 우회해야 접속할 수 있는 중계 링크를 이용해 경기를 시청해야 한다. ‘피겨 팬 되지 마세요, 그러지 마요,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에요.’ 노래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아름답다

사실 그런 노래를 부를 필요도 없다. 한국 피겨 팬은 이미 전술한 이유들로 아주 외롭기 때문이다. 팬들에겐 선수들을 위한 뾰족한 수도, 억울할 때 비빌 언덕도 없다. 언론은 메달을 따지 못할 때 대놓고 아쉬워할 뿐, 부조리함을 토로하는 팬들의 목소리엔 별로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자연히 그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하기는 더욱 어렵다. 빠른 시일 내에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다 그만두고 선수만 지켜보자고 스스로를 달래도 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두운 방, TV 화면 속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그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음 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이를 포착하는 쾌감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케이트를 타는 한국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하건대 우리 선수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아름답다. 그 꿋꿋한 아름다움을 자부심 삼아, 나는 오늘도 피겨를 본다. 이 글을 읽은 누구라도 함께 하고 싶다면 대환영이다. 한국 피겨 팬 절찬리 상시 모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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