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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줍는 시 29. 여성의 고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2 : 김소연과 고통으로 삶의 중심에 다가가기

신나리

여성의 고통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고백하자면 나는 이 문장을 받아들이고 종이에 쓰기까지 긴 망설임의 시간을 보냈다. 가능하다면 여성과 고통을 멀리에 두고 싶었으니까. 서로 가장 먼 곳에 두 단어가 위치했으면, 하고 바랬으니까. 나는 여성을 고통과 연관된 존재로 생각하는 일이 여성을 고통에 종속시키고 여성을 피해자의 위치에 눌러 앉힐까봐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에 용기를 내보기로 한 것은 여기 두 명의 시인 때문이다. 박서원과 김소연. 두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 가슴 아파서 외면하기가 불가능하고, 또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글을 고통을 제외하고 설명하는 일은 거짓말 같았다. 그래서 써본다. “여성의 고통은...

다시 줍는 시 26. 고통을 나누는 마음

신나리

나는 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작품 속 말하는 사람은 무척 괴로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뿐이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토록 괴로운 상황에 처했는지, 정확히 어떤 결의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의지가 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왜 시인 이근화는 자신의 괴로움을 정결한 언어로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나는 이 시를 읽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통하여 그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다가가보고자 한다....

다시 줍는 시 23. 나를 좀 이 노래에서 벗겨줘

신나리

예전부터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내가 바라본 엄마는 부엌에 서 있다가,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다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곤 했다.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 늘 바쁘고 피로하면서도 동시에 늘 삶에 대한 권태감을 느끼는 사람. 어른이 되어보니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다. 삶을 이루는 모든 의미들이, 또 나를 이루는 모든 의미들이 참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에. 내 삶이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 나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그만 생각하고 증명하고 싶을 때가 있기에. 그렇게 의미와 가치로 일구어진 세계에 질식해버릴 것 같을 때, 나는...

다시 줍는 시 22. 속절없이 우리는 사랑으로

신나리

시인 김행숙의 네 번째 시집 『에코의 초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시로 시작한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 깊고/부서지기 쉬운//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인간의 시간」) 오랜 시간 김행숙의 작업은 인간의 본질에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 탐구의 과정을 시로 그려내 왔다. 기나긴 여정 속에서 시인은 인간의 본질에 사랑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시집을 열면 울려 퍼지는 시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본질에 사랑이 있다고 믿고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인간에 대한 실패와 절망을 경험한 것일까? 우리는 나 아닌 존재와 마주하고 진정으로 소통...

다시 줍는 시 21. 마음 속 울음을 바깥 세상의 호흡으로

신나리

이제니의 두 번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는 8편으로 이루어진 <나선의 감각> 연작시가 실려 있다. 이제니의 시를 가장 잘 읽는 방법은, 그의 장편시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느껴보는 것이다. 내가 앞장서서 연작시를 차례로 소개할테니, 당신이 시집을 쥐고 이제니의 나선의 감각을 목소리로 그려 주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노란 수수를 쥐고 있다. 금붕어/는 초록 수초를 먹고 있다.(21p) 꼬리는 붉고 검고 짧았다. 울적한 얼굴이/하나 있었다. 얼굴이 하나. 얼굴이 하나 있었다.(21p) 첫 번째 시(검은 양이 있다)에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 속 세계에 사는 검은 양을 한 마리 발견한다. 시인의...

다시 줍는 시 3 - 우리 다시 최승자부터 시작하자

신나리

<어떤 아침에는> 어떤 아침에는, 이 세계가 치유할 수 없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또 어떤 아침에는, 내가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내가 나를 버리고 손 발, 다리 팔, 모두 버리고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숨죽일 때 속절없이 다가오는 한 풍경. 속절없이 한 여자가 보리를 찧고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보리를 찧고, 그 힘으로 지구가 돌고…… 시간의 사막 한가운데서 죽음이 홀로 나를 꿈꾸고 있다. (내가 나를 모독한 것일까, 이십 세기가 나를 모독한 것일까.) - 최승자, <어떤 아침에는>, 『기억의 집』, 문학과지성사, 1981, 20쪽. 나는 매일 아침 다르게 깨어난다. 어떤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왕창 울고, 어떤 아침에는 눈을 뜬 채로 이불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근 1년 동안, 매일 아침 깨어나는 일은 가슴에 작은 절망들을 매다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아침을 위해서 잠들기 전 베개를 탁탁 치며 다짐의 말들을 한다. 좋은 꿈꾸게 해주세요, 내일 괜찮을 거야, 잘 할거야. 그러나 아침에 잠에서 깨는 순간 꾹꾹 눌러 놓은 다짐의 말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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