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4일 열린 대규모 집회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300일이 넘도록 사경을 헤매 온 농민 백남기(69)씨가 9월 25일 결국 사망했다.
백씨가 입원하고 있던 서울대병원은 사인을 '급성 신부전증'이라고 발표했고,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 당일 오후 11시 백씨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기 위한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경찰의 신청 1시간 만에 부검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26일 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영장을 재신청한 끝에 서울중앙지법이 29일 백씨에 대한 시신 부검영장(압수수색 검증영장)을 △유족이 원할 경우 서울대병원에서 부검할 것 △유족 1~2명과 유족 추전 의사 1~2명, 유족 측 변호사 1명 참관허용 △부검절차 영상 촬영 △부검시기·절차·경과를 유족과 공유할 것 등의 ‘조건’을 걸어 28일 발부했다.
이번 '부검' 관련 논란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반응이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이미 기각된 부검 영장을, 그것도 유족이 반대하는 영장을 다시 신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백씨의 사인은 경찰 주장대로 불분명한가?
유족이 SNS를 통해 공개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백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심폐정지이고 원인이 된 것은 급성 신부전증이지만 결국 이것을 유발하게 된 것은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미 경찰은 진료 기록을 확보했으니 이를 통해 병상에 누운 백씨가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확인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경찰이 이토록 백씨 부검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부검은 보통 사람의 사망이 범죄로 인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조사하는 절차로, 보통은 상호 분쟁의 여지가 없고 유족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데 말이다.
부검영장이 기각된 뒤인 지난 26일 이철성 청장의 기자간담회 발언을 토대로 정리한 경찰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 사고는 불법폭력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 따라서 사과는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잘못됐다고 민형사상 모든 게 결정되면 그때 하겠다.
- 부검영장은 기각됐지만 또 청구할 것이다.
- 부검은 변사처리 지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일 뿐. 유족이 부검을 반대한다 해도 하는 경우도 있다. 신해철 사건도 부검 통해 사인을 확인했다.
-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여러 문제에 대비해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완전히 틀린 말이다. 이제부터 따져보겠다.
사과와 시위 불법성의 상관관계
특히 처음 두 주장이 가장 문제다. 경찰은 이미 직접 얼굴을 맞대고 사과할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다. 지난 12일 힘겹게 열린 '백남기 청문회' 자리에서 당시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
"인간적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사과는 개인 자격으로 안타까움을 표한 것에 그쳤을 뿐,강 전 경찰총장은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는 백씨 가족을 향해 고개 숙이는 것조차 거부했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잘못됐다고 법원에서 다 판결이 나고 나면, 경찰은 그때 도대체 누구에게 사과할 건가. 백씨의 두 따님인가, 국민인가.
경찰은 계속해서 민중총궐기 집회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강조해 가며 인명 살상도구나 다름없는 파괴력을 지닌 물대포를 사용한 데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백씨가 불법 집회를 주도하고 폭력행위를 이끈 것도 아니다. 백씨는 정당한 집회신고로 열린 집회에 농민 참가자 자격으로 나섰을 뿐이었다.
강 전 청장은 청문회 자리에서 '쇠파이프' 운운했다가 "우리 아버지는 쇠파이프를 들지 않았다"는 딸 백도라지씨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 경찰이 주장하는 '민중총궐기'의 불법성을 차치하고라도 시위·집회의 진압 과정에서 불필요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면, 경찰은 백번 사과해야 마땅하다.
이날 집회의 '불법성'을 운운하는 데 대해서도 취재 현장에 있던 기자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민중총궐기 당일, 이른 시간부터 광화문 네거리를 둘러싸고 경찰 차벽과 각종 집회 시위 관련 장비는 물샐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이날은 일반 시민들마저 광화문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없었다. 저녁이 되자 광화문역을 지나는 5호선 지하철까지 무정차 통과하면서 광화문 일대에 있던 시민들은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광화문 일대를 통과하려면 한두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광화문 바깥쪽을 빙 둘러서 다녀야 했다. 2011년 위헌 판결을 받은 차벽이지만, 시민 통로가 확보됐기 때문에 적법하다는 경찰 주장과는 달랐다.
행진이 예고됐고, 얼마든 평화롭게 진행할 수 있던 집회였다. 경찰이 주장하는 쇠파이프와 밧줄은 선제적으로 설치된 차벽이 없었다면 과연 광화문 광장에 등장했을까 싶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0조에 "위해성 경찰장비는 최소한도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살수차 뿐만 아니라 각종 집회시위 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최루액(PAVA), 캡사이신, 차벽 등의 경찰 장비 사용은 국민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집회를 열고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준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번 '백남기 청문회'에서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백남기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경찰이 평화적 시위를 보장해야 하는 임무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경찰의 장비나 교육 시스템 모두 안정성을 담보하기에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법원 역시 민중총궐기 당시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도 백씨 등에게 물대포를 쏘고 쓰러진 시위대를 옮기는 구급차량에까지 직사로 물을 살수한 행위 등이 일부 위법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경찰은 민중총궐기 집회가 끝난 직후 백씨가 쓰러진 데 대해 사과하기는 커녕 집회 참가자들이 미리 폭력집회를 준비했다는 사실 입증만이 급급한 듯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압수수색 직후 압수품을 언론에 공개했다. 경찰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수사상황을 공개하는 일은 정말 드문 경우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검 요구
법원이 기각한 영장을 별다른 사유도 없이 또다시 청구하겠다는 주장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4, 5번 주장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백씨 사망으로 앞으로 있을 여러 문제라는 것은 뭘까. 지금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은 집회시위 관련 장비로서 살수차 사용의 적정성과 백씨가 '쓰러진' 상황에 대한 책임소재인데, 이것은 백씨의 부검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백씨는 의료사고나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민이다. 이 때문에 백씨의 가족들은 현재 경찰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형사고발하고, 경찰의 살수차 운용지침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또한, 국가 등을 상대로 2억 4000여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형사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이자 민사사건의 피고인 경찰이 직접 백씨의 시신을 압수해서 부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셀프수사'의 끝판왕을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마치 사기범이 자신을 고발한 사람의 통장을 뒤지거나 절도범이 자기가 턴 집의 열쇠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격이다.
경찰이 이토록 부검에 집착하는 것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이유 대신 '부검'에 눈길을 돌리도록 해 시간을 끌고 결론적으로 책임을 미루기 위한 술수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도리어 경찰이 직사 살수가 아닌 경고와 곡사 살수를 한 것 처럼 보고서를 기재했다는 정황마저 드러난 가운데 지금 시급한 것은 농민의 부검이 아니라, 농민을 쓰러뜨린자가 누구인지를 밝혀낼 검찰 수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