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낙원(樂園)

알다노인

노인을 위한 종로는 없다 : 낙원(樂園)

어니언스

20년 세월의 아욱국

“김치도 있으니까 모자라면 더 말하고, 후추도 뿌려 먹어. 그래야지 맛있어”

더운 날씨로 땀범벅이 됐다. 국밥 한 그릇을 비운 노인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노인이 나가자 가게는 텅 비었다.

2000원에 국밥을 파는 4평 남짓, 20년 세월 국밥집. 가게 외관에서 그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황태해장국, 아욱국, 우거지국. 선택지가 단촐했다. 아욱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전체적으로 국밥집 내부는 허름한 외관과 다르게 주인의 손길이 많이 닿은 듯 정갈했다. 후추와 소금도 깔끔하게 놓여있었다. 냉면 그릇에 아욱국이 가득 담겨 나왔다. 공기에 담겨있는 밥은 윤기가 흘렀다. 만원 한 장을 내고 점심 한 끼를 배불리 먹고도 8000원이 남았다. 

맞은편 가게도 아욱국을 2000원에, 순대국밥은 5000원에 팔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순두부찌개, 콩나물국밥, 선지해장국을 2000원에 파는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65세 이상 무료승차 권한을 가진 노인들은 여기저기서 종로로 모여든다.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이 있고, 실버영화관 그리고 값싼 음식들을 파는 낙원상가 일대가 있다. 

낙원동의 물가는 굉장히 저렴하다. 이발, 술, 국밥. 노인들이 즐겨하는 것들이다. 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가구의 월 평균 식비 지출액은 23만 3118원이다. 노인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7770원을 식비로 쓰고 있는 것이다. 삼시세끼를 다 먹는 데 7770원이 든다면 낙원동의 2000원짜리 국밥은 그들에게는 없어지면 안 되는 외식공간일 것이다.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못한 노인들에게 저렴한 이곳은 일종의 낙원인 셈이다.

가장 비싼 월세 100만원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기(67)씨는 종로에 터를 잡은 지 5년째다. 공무원을 정년퇴직하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젊었을 적 소망이었던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2년은 음식도 장사도 몰랐던 그에게 큰 고난이었지만, 새벽에 가게에서 쪽잠을 자면서까지 노력했다. 최근에는 장사를 반대하던 아내가 저녁시간에 나와 일을 돕기 시작했다. 장사를 인정한 셈이다. 

그는 인터뷰에 친절히 응해줬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손님이 서너 명 들어왔다가 나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지금 인터뷰 중이니까 다음에 오세요.” 오히려 손을 내저었다. 그에게 창업 장소로 ‘종로’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단가가 싸서 큰 돈을 벌 수 없지만, 기본은 유지할 수 있어요.
여긴 보증금 1000만원에 100만원 월셉니다.

그는 100만원이 낙원동 쪽 상가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월세에 속한다고 했다. 낙원동 상가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저렴한 월세가 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이곳의 저물가가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낙원동 부근은 노인이 많이 찾는 곳이고 상가들은 허름하고 오래된 곳이 많다. 저렴한 월세, 박리다매로 노인 상권이 형성될 수 있었다. 노인들을 위해서 싼 가격에 장사를 하고, 이곳을 찾은 노인들에게 많이 팔아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종로

낙원동 이발관에서는 3500원이면 머리를 손질할 수 있다. 가게에 들어서자 세 명의 미용사가 노인들의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손놀림이 능숙해 보였다. 손님은 총 여섯. 그중 머리 손질을 막 끝낸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손님한테 물어볼 것은 없어? 그럼 내가 대답 잘해줄게.” 개구진 미소였다.

“10년 전과 지금의 종로의 모습에변화가 있나요?”

“여기는 변함이 없어, 그대로야. 종로가 변하면 안 돼”

“이 집이 머리를 제일 잘해!”
“맞아 맞아! 이 집이 머리 제일 잘해.”

그는 거울을 보면서 한결 깔끔해진 구레나룻을 양손으로 눌렀다. 그곳에 있던 노인들은 하나같이 이발소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닐슨코리아의 '6085라이프스타일 보고서(2016)'에 따르면 60~85세 고령층의 총 소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료품 및 생활용품(41.0%)로 나타났다. 외식(10.0%)과 경조사비(10.0%), 교통비(8%)순이었고 의류 및 뷰티(7%)가 그 뒤를 이었다. 주거비, 취미, 의료가 하위권에 머물렀다. 식료품 및 생활용품 구입비와 경조사비, 교통비 등은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요소들이다. 외식과 의류 및 뷰티는 어쩌면 ‘작은 사치’에 속하는 소비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의류 및 뷰티'는 향후 줄일 의향이 있는 첫 번째 순위(32%)로 집계됐다. 미용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제일 먼저 줄이는 부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은 낙원동 일대를 자주 찾는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하고 싶은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외식공간이 많을 뿐더러 낙원동의 이발 가격은 평균 3500원이다. 수도권 이발관의 커트가격은 대략 만 원 정도다. 동네 저렴한 이발소도 7000~8000원 선이다. 동네에서 이발하면 2~3배의 돈이 지출된다. 낙원은 딱 그 반절만 내면 된다. 

의류는 또 어떤가. 길거리에 자리를 깔고 잡다한 중고 물품을 파는 ‘벼룩시장’ 앞에서 노인들은 발걸음을 멈춘다.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모습은 종로부터 동묘까지 이어져 있다. 2만원만 있으면 양복 한 벌을 거뜬히 맞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의류 및 뷰티’에 지출하고픈 노인들은 낙원동, 그 일대로 모인다.

서서히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그러나 종로 일대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2001년 탑골공원 성역화, 2007년 종묘공원 성역화, 그리고 피맛골의 현대식 빌딩화 등 부분적인 개편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로 일대 땅값은 높은 편이다. 땅값이 높으면 월세도 높게 책정된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려면 메뉴 가격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낙원거리 상점들은 낮은 물가를 고수하고 있다.

길에서 만난 한 노인은 앞서 언급된 이발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여기 이발소들도 요즘은 다들 조선족을 쓰는 것 같더라고. 인건비가 적게 들어 그래.”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 올해 소고기 값이 세배가 올랐는데 그거 올릴 수가 없어갖고 작은 거 육천원짜리를 안 팔고 그냥 만원짜리 한 가지만 팔아요.
건물 주인이 아는 사이라 월세를 안 올려서 그렇지. 월세를 올리면 가격 유지는 힘들어요.

냉면가게 주인 한 아무개 씨가 말했다. 계속되는 물가상승에 재료값이 올랐다. 하지만 가격을 올릴 수는 없다. 재료값이 올라서 덩달아 음식의 가격을 인상하면 낙원동의 노인들은 올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몇 십 년 세월 장사해온 인근 냉면 가게 주인은 노인들이 끊이지 않도록 음식의 가격을 올리기 보다는 메뉴를 조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이곳의 주인들이라고 영향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낮은 물가를 가능케 하려면 결국 여러 ‘방법’을 쓰게 된다. 저렴한 가격은 낙원동 일대의 정체성과 같았다. 인근 상인들은 그것을 일부러 바꾸려 하지 않았다. 싼 가격은 노인 뿐만 아니라 가게 주인들에게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탑골공원 옆길, 그 좁은 골목. 한낮에도 노인들은 막걸리 판을 벌인다. 달아오른 아스팔트 길에 그대로 앉아있는 노인들도 보인다. 부채를 든 손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낙원동 노인들의 풍경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는.

by 허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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