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뽕짝 메들-리
9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던 남자들이 흘낏 쳐다봤다. 9층에는 왜 가요? 왠지 모를 조소가 담긴 질문. 거기 더러워. 질 나쁜 데야. 노망난 데. 그렇게 말하고는 저들끼리 웃었다.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낄낄 웃던 남자들이 입을 꾹 닫았다. 남자들은 6층 당구장에 내렸고 나는 혼자 9층에 내렸다. 귀가 먹먹했다. 가외에는 허름한 소파들이 쭉 놓여 있고 100평은 돼 보이는 내부는 짝을 이뤄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머지는 자리에 앉아있거나 옆에 앉은 이성과 귓속말을 나눴다. 음악소리가 요란했다. 무도장을 쿵쿵쿵. 키만 한 스피커가 10m에 한 대씩 놓여 있는 덕에 소리를 피하려 해도 피할 곳이 없었다. 여자가 옆에 와 앉았다. 슬쩍 나를 기울여보던 여자는 엉덩이를 조금 더 내 쪽으로 붙여 앉고 말을 붙였다.
“어디서 왔어? 뭐하는 거야?”
진분홍 립스틱에 파란색 스트랩 슈즈, 나풀나풀한 치마까지. 한껏 멋 부린 그녀에게 답을 해줬다.
“여기, 취재하러 왔어요!”
“뭐라고?”
“취재요! 취재! 여기서, 저 백발 언니분이랑 선생님이 춤을 너무 잘 추셔서 계속 쳐다봤어요.”
여자는 말없이 씩 웃었다.
“고마워. 나, 칠십 살 넘은 할머니다!”
서울 종로구 관수동 20번지 국일관 드림팰리스. 종로 3가 한복판에 있는 큰 건물이다. 이곳의 역사를 말해볼까. 1920년 무렵 세워진 이 건물은 김두한이 활동하던 주무대이기도 했다. 그 유명한 명월관도 여기에 있었다. 주인은 몇 번 바뀌었고 2016년인 지금은 컴퓨터학원, 갈빗집, 당구장, 노래방 등 2016년다운 가게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콜라텍과 당구장 가는 엘리베이터는 국일관 입구 옆에 따로 있었다.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 한참을 문 앞에서 얼쩡거렸다. 무엇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세 번 올려 보내고 네 번째에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함께 탄 노인들은 나를 흘끔흘끔 훔쳐봤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익히 보던 클럽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수금원이 망사 옷을 입은 50대 여성이었고, 들려오는 음악이 뽕짝이었고 안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춤동작이 느릿느릿했으며 평균연령이 70~80대라는 거였다. 남녀노인이 손을 맞잡은 모습은 몹시, 매우 많이 생경했다. 수금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여기, 할머니들 노는 데야!”
내부는 사람들로 넘쳤다. 나는 출입구 가장 가까운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누구의 동선에도 해가 되지 않는 자리이자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는 자리였다. 모두들 열정적으로 천천히 춤추고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마주보고, 남성이 여자의 허리에 손을 올린다. 다른 한손은 서로 맞잡고 있다. 뒤로 스텝 두 번, 앞으로 스텝 두 번, 제자리에서 스텝 두 번, 여자가 한 바퀴 턴을 돌고 다시 스텝, 그 다음에는 여자와 남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서 스텝을 밟는다. 이렇게 단순한 동작만 반복했다. 진짜 라틴댄스도 아니고 지루박도 아닌 춤이었다. 가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가사를 알아듣기도 힘든 디스코 뽕짝 메들-리에 맞춰서, 너무나 열심히 스텝을 밟고 또 밟았다.
거기에 앉은 취재 이튿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스테이지로 돌아갔다. 평균연령 7080인 공간에서 혼자 앉아 글을 끼적이고 있자니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호기심 어린, 그러나 경계심 가득한 시선들. 이어 콜라텍을 5년 다녔다는 김아무개(78, 남)씨가 옆에 앉았다. 김씨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남자들에 대해 말하자, 그는 조금 흥분한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를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 많은 곳에는 뭐든 문제가 생기게 돼 있어. 남녀가 모이면 특히 그래. 어디든 이성교제는 있어. 다 자기 하기 나름이야.”
콜라텍은 음악만 다른 클럽이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귀에 가까이 대고 고함을 쳐야 대화가 가능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대화 상대방이 기침을 하고, 그 기침이 대화가 길어질수록 잦아진다는 거였다.
“혼자 계시는 분들이 많이 올까요?”
“혼자 된 사람도 많이 오지만 배우자가 없게 돼서 오는 곳이 아냐. 그런 사람들이 드러나서 그렇지. 볼링 치는 사람이 혼자 돼서 가나? 여자들 운동하러 가는데 혼자 돼서 운동하고 둘이 되니까 안 가고 그런 것 없잖아. 그런 게 선입견이야. 부부간에 있는 사람도 오고 없는 사람도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도 오고 재밌어서 오고 친구 만나러 오고 사람마다 목적은 가지각색···”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침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물 한 컵을 떠다 줬다. 심호흡하는 그를 등지고 춤추는 그녀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춤사위를 찍지는 못했다. 춤추는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
콜라텍의 여성노인들
종로는 수도권에 사는 노인들이 젊은 시절 가장 번화했던 곳이다. 그때 생긴 가게나 지형이 크게 변하지 않아 노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다. 쭉 종로로 ‘출석’하는 노인들도 있고 노인들끼리 오랜만의 동창회, 계모임을 비롯한 각종 모임을 종로에서 갖는 경우도 많다. 노인들을 종로로 소환하는 힘은 친숙함이자 그리움이다.
그런데 공원 부근에 가면 온통 남성노인 뿐이다. 종로에서 여성노인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여성노인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고심했다.
답은 의외로 쉬웠다. 남성노인들은 가부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갖는다. 이 때문에 가족 구성원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공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남자는 바깥활동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으로 인해 야외공간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성노인들은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고 판단해볼 수 있었다.
실제로 종로노인복지센터를 취재한 결과 여성노인과 남성노인의 이용비율은 7:3 정도로 여성노인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복지관에서 여성노인들은 난타, 당구, 요가, 에어로빅 등 몸으로 하는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했다. 종로까지 나오는 여성노인들도 활동적인 실내를 좋아했다. 종로에 나온 여성노인들은 ‘먹고갈래 지고갈래’라는 바(Bar) 또는 시원한 곳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콜라텍으로 향한다. ‘먹고갈래 지고갈래’는 부근에서 꽤 유명한 곳으로, 공연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콜라텍은 본래는 청소년의 건전한 놀이공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만들어지고 불과 몇 년도 안 돼서 이 공간은 노인들의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청소년들에게는 별 흥미로운 공간이 되지 못했지만 노인들에게는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하면서 입장료도 저렴한 휴게공간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전용콜라텍은 서울 시내 약 200곳 정도로 파악되지만 이중 90%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일관 콜라텍은 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형 콜라텍이자,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합법 콜라텍이다. 이곳에서는 여성노인도 쉽게 볼 수 있다. 국일관 콜라텍에는 평일 하루 800여명, 주말은 1000명까지 밀려든다. 낮12시에서 저녁6시까지 영업하고 입장료는 천원이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수금원이 천원을 받고 입장을 돕는다. 몇 백 명은 거뜬히 수용할 정도로 넓은 공간인데다가 에어컨도 빵빵하고 뽕짝메들리에 성인가수들의 공연도 더러 있다. 국일관 콜라텍 사장님도 초대가수 중 한 명이다. 가방이나 외투가 거추장스럽다면 걱정 없다. 500원을 내면 짐을 보관해준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식당이 있다. 뷔페식이다. 음료와 술을 파는 곳도 있다. 천원에 입장해 종일 있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말을 붙이면 대꾸 않고 자리를 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곳’에 오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콜라텍 엘리베이터 앞에서 81세, 남아무개 씨를 겨우 붙잡았다. 나는 질문하고 그녀는 대답하는 동안 그녀는 자꾸 뒷걸음질을 쳤다. 결국 대화 말미에는 그녀를 건물 벽에 몰아세워놓고 이야기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이고 소문에. 소문 듣고. 그런 데가 있다고 하더라. 그래가꼬.”
“보통 집에 말을 안 하시고 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첨에는 여기 오면 큰일 나는 줄 알았죠. 그런데 (막상) 와 보면 그냥 손만 잡고 놀다 가면 되는데. 그런데 이걸 애들이 알게 되면, 아무리 이런 데지만 엄마가 이런 데 다닌다고 하고 남자친구캉 논다고 하면 애들이 덜 좋아하겠지 아무래도. 취재도 다들 아마 잘 안 하시려고 할 거야. 요새 하도 스마트폰도 있고 하니까 어디에라도 새 나갈까봐.”
“여기 다니기 전에 또 다른 취미생활 같은 거 있으셨어요?”
“아뇨. 나는 시어머니 계시고 시동생도 편찮아가지고. 시집살이 하고 살림만 하고 가사일했죠. 애들 보고 학교 보내고. 그러다가 육십이 넘어서 보험회사 들어갔고. 그때까지는 영감님도 있었고.”
“아, 영감님은 집에 계세요?”
“우리 영감? 내가 육십 다섯 먹었을 쯤에 돌아가셨지. 나중에 친구가 한번 여기를 같이 가보자고 그래. 그래서 와봤지.”
그녀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신경 썼다. 대답을 마치고 더 이상 질문할 것이 없는 듯하자 그녀는 잰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콜라텍에 춤을 추러 오는 노인들은 가장 욕망에 충실한 존재들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춤을 추고 싶은 욕망, 교제를 하고 싶은 욕망, 잠시 놀고 싶은 욕망에 이곳에 왔대도 ‘비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여성노인들은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기 때문에 취재에 응할 수 없다”고 답했고 한 남성노인은 “친구들을 만나면 춤을 춘다고 말할 수 없어 종로에 있는 다방에 차를 마시러 간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데 다닌다고 하면 소득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건달 취급한다.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콜라텍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종로노인복지센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최아무개(76)씨는 젊은 시절 종로를 다녔다고 했다. 그녀에게 종로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묻자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뺑뺑이를 몰라.”
“뺑뺑이요?”
“춤추는 거 있잖아, 왜. 그걸 몰랐다는 게 아직도 후회될 때가 있어. 안 배워서 정말 아쉽지. 젊을 때 그런 것도 해보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것도 학원 가서 다 배우고 하는 거거든.”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아무개(72)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30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했던 이씨는 얼마 전 ‘은퇴’했다. 그녀에게 종로, 콜라텍은 왠지 두려운 공간이었다.
최씨는 저만치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자리를 떴다.
여성노인들은 특히 가정에서 해방된 후에야 이곳을 찾아온 경우가 많았다.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가 되고, 손자손녀를 돌보는 육아노동에서도 해방되고서야 콜라텍이라는 유흥의 공간을 찾아왔다는 얘기다. 콜라텍은 여성노인이 선택해서 가는 곳 중 가장 ‘불건전한’ 곳이다. 그러나 가부장제에서 살아왔던 그녀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놀이가 굳이 교과서적으로 건전할 필요는 없다.
뽕짝 멜로디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다가 마음에 드는 파트너에게 윙크 한번 날릴 수 있는 노후라면, 2066년도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by 김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