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도시를 여행할 때의 이야기다.
여성이라면 여행갈 때 월경 날짜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바닷가에 갈 날짜를 잡기 전에 월경 달력어플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바닷가에 가기 일주일 전에 월경이 시작된다고 나와있었다. 난 어플을 철썩같이 믿고 여행 일정을 짰다.
그런데 일은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예상날짜가 다가왔는데도 월경을 할 기미는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바닷가로 떠나기 이틀 전에 시작되어 버렸다.
월경 기간에도 여행을 쾌적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 피임약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탐폰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피임약은 애초에 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피임약을 먹으면 여드름이 폭발한다는 글을 적잖게 봐서, 여드름으로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는 나는 자연스럽게 피임약을 꺼리게 되었다. 이렇게 선택지는 딱 하나 남았다. 탐폰.
마침 친구가 탐폰을 많이 갖고 있어서 나한테 자기것으로 부담없이 시도해보라고 했다. 탐폰을 쓰면 월경을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신세계라는데, 이번을 기회삼아 나도 신세계를 체험해 보고 싶었다. 좋아 결심했어!!!
그런데 줄곧 생리대를 써와서 그런지, 이 나이 먹고도 탐폰을 어디에 어떻게 넣는지 몰랐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이론은 완벽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거울과 탐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두 번이나 깨끗하게 씻고 변기에 앉았다.
질구에 탐폰을 넣으려고 하는데 여성의 신체 구조상 내 생식기인데도 내가 쉽게 볼 수가 없어서 질구를 찾기가 참 불편했다. 그래서 한 손은 손거울을 들고 생식기를 관찰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탐폰 넣기를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는 장렬하게 실패했다.
너무 아팠고, 각도를 조절해서 넣는데 당최 여기가 맞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파도 참으면서 넣다보면 쑥 들어간다는데 여기가 아픈게 정상인건지 의심이 들었다.
실패 후 괜히 의기소침해진 나는 다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월경 첫날에는 양이 적어서 질구가 건조하기 때문에 탐폰이 잘 안 들어간다는 걸 알고 양이 많은 둘째날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둘째날. 어제 유튜브에서 봤던 탐폰 영상들을 싹 다 복습하고,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채 변기에 앉았다. 하지만 또 실패했다. 이 생경한 느낌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누가 나한테 여기에 넣는게 맞는건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셋째날. 바다에서 놀기 위해 탐폰을 낀다기보다는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니깟게 뭔데 안 들어가는데?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짜증이 났다. 이것만 끼면 즐겁게 놀 수 있는데, 남들도 하는걸 나만 못해서 여행지에서 하루를 날려버리는 꼴이었으니까. 시간은 금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특히 여행지에서는 더 그렇다.
어쨌든 셋째날도 실패했다. 그리고 난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가 난 이유를 분석하자면 이렇다.
첫째. 중고등학교에서는 왜 탐폰을 넣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나?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다른 과목은 몰라도, 사실 성교육은 내가 받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여학생(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고 싶진 않지만)들한테 생리대 붙이는 법만 알려주고 탐폰 넣는 방법은 안 알려줬던 당시의 성교육에 화가 났다.
둘째. 여성의 성기는 왜 외부로 노출되어 있지 않는가? 렌즈인생 n년차(n>5)인 나는 이제 거울을 보지 않고도 렌즈를 꼈다 뺐다 할 수 있다. 탐폰도 습관이 되고 요령이 생기면 눈에 렌즈를 착용하듯 쓸 수 있을텐데, 여성의 성기는 팔꿈치나 발가락처럼 쉽게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느낌만으로 탐폰을 넣어야 한다. 그래서 탐폰에 거부감을 갖는 여성들도 있다.
셋째. 이건 첫째, 둘째 이유와 연결된다. 나는 왜 이 나이 먹고도 탐폰을 어디다 어떻게 넣는지도 몰랐나? 버진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내 몸을 잘 모른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넷째.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이 처음으로 싫었다. 나는 안정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이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70% 정도는 그렇다. 이런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경한 느낌을 경험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남자는 이런거 모르잖아요?
다섯째. 다른 이유 다 떠나서 남들은 한두번에 쑥쑥 잘 넣고 신세계를 체험한다는데, 못하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서 싫었다.
여섯째. 올해 목표가 수영 배우기였는데, 대부분의 수영장은 월경 할인이 없다. 탐폰을 낄 줄 알면 상관이 없는데, 나는 탐폰을 못 끼니까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때 수업을 일주일 정도 빠지게 된다. 그러면 한달 비용을 내고도 3주정도밖에 못 다니는 꼴 아닌가.
나는 쫄보라서 탐폰을 다시 시도하지는 않을거다. 무엇보다도 생경한 느낌이 너무 싫었다. 영미권 여학생들은 청소년때부터 탐폰을 사용한다는데 우리나라 여성들은 탐폰을 접하는 시기가 영미권보다는 대체로 늦은 것 같다. 물론 내 머릿속 추측이라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우리나라도 성교육을 제대로 해서, 여학생들이 여러 월경용품을 접하고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