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불편함: 칭찬의 탈을 쓴 외모 평가

핀치 타래페미니즘일상

사소한 불편함: 칭찬의 탈을 쓴 외모 평가

여성이 겪는 사소한 불편함과 일상에서 마주하는 코르셋

바늘

1. 돈이 없어서 쿠/팡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내가 맡은 일은 바코드를 찍고 재고 수량을 세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뒤숭숭할 때라 일하는 사람들은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딱히 누구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데다가, 마스크를 껴서 말하기도 불편하니 잘됐다 싶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옆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내가 처음 온 티가 났는지 목장갑을 끼고 PDA를 터치하면 인식이 안 되니 목장갑 검지손가락 부분을 자르라고 했다. 여기까진 고마웠다.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아저씨는 아르바이트를 신청하려면 문자를 보내고 확정문자를 받아야 하며 취소는 당일 밤 10시까지 가능하다 등등 이것저것 말을 했다. 내가 모르는 줄 알고 알려주려고 하셨나본데 이걸 알았으니까 아르바이트를 신청했겠지.

그래. 이것도 괜찮았다. 나는 낯선 사람과 불필요한 말을 섞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아저씨는 심심했나 보지. 아저씨는 그 이후로도 학생처럼 보이는데 이런데 오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라, 나는 여기 주말에만 온다, 다른 층에서는 무슨 일을 한다 등등 엄청나게 떠들어댔다. 덕분에 나는 재고를 세다가 까먹어서 다시 세곤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나중에 또 만나면 인사나 하자면서 얼굴을 서로 보여주자고 하는거다. 이 사람 뭐지...? 라고 생각했지만 귀찮아지기 싫어서 대충 마스크를 내려서 얼굴을 보여주고 다시 재고를 세는데. 

"엄청 순하게 생겼네? 되게 순하게 생겼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어쩌라는거지? 칭찬이랍시고 한 말인가?  

2. 내가 순해보인다니. 엄마나 친구들이 들으면 폭소하겠다.

나는 왜 떨떠름했을까? 생각해봤다.

외모 평가를 당했기 때문이다. 저사람 입장에서는 여자가 순하게 생긴게 좋은 거니까 당연히 제딴엔 칭찬이라고 한 말이겠지. 순하게 생긴 여자=좋은 여자, 착한여자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는건데 이 또한 여성에 대한 코르셋 아닌가. 

내가 독하게 생겼으면 어쩌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SERIES

사소한 불편함 이야기

바늘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