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방에 있는게 좋았다. 집 자체를 좋아하는 집순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방이 제일 좋았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지금도 내 방이 제일 좋다.) 거실에서는 엄마가 앉아서 TV를 보고 있고 아빠는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가족이라도 거실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들은 문에 민감하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중고등학생때 엄마랑 싸우고 문을 쾅 닫을 때면 엄마는 즉각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태도가 그게 뭐냐고 나를 혼냈다. 싸울 때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문을 닫고 있을 때도 방에서 뭘 하길래 문을 닫고 있냐며 궁금해 하기도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나는 계속 문을 닫고 생활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동생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 항상 방문을 닫고 지낸다. 아무리 방에 있어도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뭔가 불편했고,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놓거나 홈트를 할 때에도 완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 동생도 비슷한 이유겠지. 몇 년을 이렇게 살아서 그런지 엄마는 이제 내가 방문을 닫고 있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는다.
흔히 집에서 밥먹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따뜻한 찌개, 밑반찬들을 함께 먹으며 하하호호 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집은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 않다. 가족끼리 밥을 따로 먹어서 분위기가 안 좋아진건지, 분위기가 안 좋아서 밥을 따로 먹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나는 식사시간이 돼도 배가 안 고프면 밥을 안 먹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 편이다. 먹는건 꼭 쌀밥이 아니어도 된다. 반면에 엄마는 배가 안 고파도 밥때가 되면 무조건 '쌀밥'이 들어간 식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가족이 밥을 먹을 때 안 먹거나 따로 방에 들어와서 먹었다.
엄마는 이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개인주의자인 두 딸들을 단체생활 지지자(?)로 돌리는 것을 포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넌지시 불만을 얘기하거나 은근히 비꼬고는 한다. "우리집은 밥 다 따로 먹잖아~"라며.
이 때문인지, 나는 줄곧 내 성격에 아주 큰 문제가 있는 줄 알았고, 개인주의 자체가 나쁜 건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와 나는 '다를' 뿐이다. 엄마는 '가족간의 정',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이다. 둘이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주의자인 나'와 '딸인 나'의 자아가 충돌할 때가 있다. 나는 문 닫고 방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한편으론 '엄마가 닫힌 방문들을 바라보면서 가끔씩 무슨 생각을 할까' 를 생각하면 K-도터로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와 대화를 단절하고 하숙메이트처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밥은 왠만하면 같이 먹으려고 하고, 마트도 같이 가고, 산책도 함께 한다. 내가 과일을 먹고 싶을 때 엄마도 먹을거냐고 물어보고, 나는 쓰지도 않는 백화점 브랜드 립스틱을 엄마한테는 선물로 주기도 한다. 나는 항상 그래왔듯 엄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 스스로 정의내렸다. 개인주의자인 나는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