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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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2)

유월의 복수전공, 한국어교육학과 그리고 휴학 중

유월

2018년 초, 내가 공부하고 있던 사회복지의 학문뿐만 아니라, 갑자기 새로운 학문도 배워 보고 싶어서 한국어교육학을 복수전공하게 됐다.


한국어교육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중학교 3학년 때의 경험과 관련 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나는 장애학생 컴퓨터정보대회에 참가했는데, 좋은 성적을 받아 일주일 동안 베트남을 가게 됐다. 부모님 없이 장애 학생, 관계자, 자원봉사자와 함께 하는 여정이었다. 

베트남에서 예쁜 풍경을 보고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었었다. 그러나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현지인 언니를 만났던 순간이었다. 언니를 만난 그때 나는 장애인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단발 머리를 한 언니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나는 귀가 안 들린다고, 필담해 달라고 손짓했다. 언니에게 받아든 쪽지에는 반듯한 글씨로 이런 말이 써져 있었다. 너의 미소가 예뻐, 이름이 뭐야? 이메일 주소도 알려 줘. 이런 한국어의 문장이었다. 잊지 못할 찰나였다. 

아쉬운 것은 내가 바보처럼 내 이메일 주소를 잘못 알려줬다는 것이고, 더 이상 연락은 닿지 않았다. 꽤나 아쉬웠지만, 언니의 이름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언니가 편견 없이 다가와 준 것에 감사했고, 언니가 선사해 준 좋은 기억을 매개로 내 세계 여행과 외국인과의 소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일부 청각장애인의 경우는 한국어를 읽고 쓰는 것이 힘들다. 

비장애인은 소리와 글자를 연결해서 글자를 읽는 법을 배운다. 반면, 청각장애인은 귀가 안 들리기 때문에 읽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뇌가 글자 읽기를 거부한다. 글자를 배우면 뭐가 좋은지 모르고, 동기를 느끼지 못하니 뇌가 자연스럽게 읽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작문도 마찬가지다. 비장애인은 소리를 들으며 문장 배열과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문장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 청각장애인은 특히 조사를 헷갈려 하고, 습득 단어가 한정돼서 어휘력이 부족하다. 한국어 문장 어순이 아닌 수어의 어순대로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에게는 모국어가 없는 셈이라고 한다. 청각장애인이 글을 잘 쓰는 것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잘하는 것과 똑같다고도 한다.

신기하게도, 내 꿈의 이유가 된 두 가지를 어느 날 한꺼번에 마주한 적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체코의 청각장애인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배움에 열정이 있고, 한국어에 애정이 있는 장애인도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한국어 교육에 대한 내 열정이 더욱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때, 또 한 번의 역경을 마주했다. 

복수전공을 공부하던 2학기 말, 이번에는 한국어 실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복수전공의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해 편지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교수님께서 내 고민을 듣고 회신해 주신 편지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이유로도 개인의 자유를 침범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장애를 이유로, 단지 단 한번의 오프 수업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월 님이 복수전공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된다면, 그것은 학교가, 이 사회가 유월 님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평등한 일을 자행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동의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 오프 수업에 참석하지 않으면 실습 과목을 이수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에게 시험 문제를 눈으로 보고 풀지않으면 통과시켜 줄 수 없다, 혹은 청각장애인에게 듣기 평가를 반드시 듣고서만 풀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가진 장애가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방해 요소가 된다면, 그것을 대체할 다른 방법을 주고, 대안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지 않고 무조건 당신은 장애가 있으니 그것을 수행할 수 없다고만 결론 짓는 것은 개인의 기회를 제한하는 불평등한 행위이며, 자유의 억압입니다. 

유월 님께서 가지신 장애를 본인의 한계로 여기고 이 사회가 내놓은 제약들에 그대로 갇혀 계시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당신이 선택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불평등한 제약을 내세우는 이 사회에 분노하고 싸워서라도 유월 님이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얻어 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반드시 한국어교육학과를 복수전공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유월 님의 진로에 이 복수전공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과감히 포기하시는 게 맞습니다. 온전히 본인의 미래를 위한 본인의 선택일 경우에는요. 

하지만 만약 복수전공을 포기하는 이유가 학교에서 오프 수업에 반드시 참석하는 것을 필수로 내세우기 때문이라면, 학교에 강하게 호소해서 대안을 얻어내시고, 끝까지 원하는 바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저도 아직 한국어교육학과의 실습 과목이 본격적으로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세부 조건들이 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또, 한국어교육학과의 경우, 학교 문제와는 별개로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문제도 걸려 있습니다. 

저도 이번 학기가 마무리되면 12월 중에 국어원 측에 실습에 관련해서 몇가지 문의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애 학생의 경우 어떠한 대안이 마련이 되어 있는지 문의할 것이며, 없다면 마련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할 계획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지는 자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싸워서 얻어내야만 지켜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 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장애를 이유로 위축되지 마시고, 장애를 이유로 자유를 속박받지 마십시오. 그것을 당연시 여기면 절대로 안 됩니다. 

유월 님이 한발씩 사회로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며, 때로는 함께 싸우며 응원하겠습니다. 한번 꼭 안아 드리고 싶네요.



교수님께 편지를 받아서 감동받았고, 교수님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난 후 처음으로 존경한다고 느낀 스승님이 되었다. (물론...... 내가 전공이 어려워질 때마다 교수님께 연락하고 또 연락해서 죄송한 순간도 있다.) 

교수님께서는 작년 내내 국립국어원에 '장애 학생을 위한 실습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셨지만, 국립국어원 측에서는 "선례가 없어서 당장 대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한국어 교육을 할 때 발음과 듣기 능력를 향상하는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구어가 어려운 청각장애인이어도 모의 수업을 할 때는 반드시 구어로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구어를 구사할 수 없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모의 수업을 진행할 때 휴대전화의 음성 변환 텍스트 앱을 사용하려고 했던 나는 국립국어원의 답변에 큰 실망을 느꼈다. 부당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컸지만, 대안이 생길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대응을 할지, 하지 않을지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의 자유와 여성, 장애 학생의 교육권을 위해 끝까지 국가기관과 싸워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서 2019년 12월 초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단체와 함께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이 유효하려면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고 했고, 올해 학교 휴학을 하게 됐다. 지금도 여전히 휴학 중이다.

세 달이 지난 지금, 아직 인권위 측의 소식은 없다. 신속히 결과가 나오길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 싸움의 끝엔 좋은 결말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부디 내가 낸 용기가 옳은 길로 귀결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장애 유무를 떠나 모든 여성이 나의 사례를 보고 본인의 길을 멋지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유월의 이메일: fraiserosecerisi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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