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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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1)

유월의 주전공, 사회복지학

유월

2015년,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다리 수술과 재활로 학교 일 년 꿇었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이버대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일반대학교 대신에 사이버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엄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엄마는 나를 챙겨 주셨다. 아침을 먹이고, 학교 갈 준비를 같이 해 주셨다. 

중고등학교 때는 전부 조금 먼 학교를 다녔다. 

엄마는 항상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해 주셨는데,  차가 오는 시간은 매번 달랐다. 가끔은 차가 밀리는 바람에 너무 늦게 오는 날이면 나는 혼자 기다리고 있다가 지각하곤 했다. 하교할 때도 특수반 교실에서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육 년 동안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과 비슷했다. 수험 생활을 할 때 집에서 EBS 강의를 들었던 것처럼 컴퓨터로 인강을 듣는 느낌이었다.

수강신청 시기에는 내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일반대학교와 다르게 정해진 시간표는 없었지만, 신청한 과목을 요일별로 배정해서 나름의 시간표를 만들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청각장애로 인해 수업 내용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이버대학교에서는 외국어, 영어를 제외하고 모든 강의에 자막을 제공했다.

항상 강의를 들을 때마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과 자막을 번갈아 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수업을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과제도 강의실 게시판에 첨부 파일을 올리면 끝났다. 

시험은 동시시험과 비동시시험, 쪽지 시험이 있다. 

동시시험은 예정된 저녁 시간에 맞춰서 보는 것이고, 비동시 시험이나 쪽지 시험은 원하는 시간에 보는 것인데 모든 시험은 컴퓨터로 봤다. 개강부터 종강까지 다 컴퓨터로 공부할 수 있었고, 성적도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많았다. 

 제일 아쉬운 것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친한 동기를 만날 창구가 없었다. 친구들도 대학생이 되면서 바빠지고 먼 곳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누군가를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밖을 나가는 날보다 집에만 있는 날이 되레 더 많았다. 사실은 몇 년간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주된 연락 수단이 대면이 아니라, 카카오톡이라는 사실은 항상 아쉬웠다. 내 인간관계가 좁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졌다. 


그래도 나를 버티게 한 것은 공부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고 싶던 사회복지학 전공을 품고 버텼다. 전공 이론을 배우면서 하나하나 알게 되는 순간들이 참 많았다. 

여성과 장애인 복지를 더더욱 전문적으로 배우며 연구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공부를 하는 데는 장애물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장애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 전공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관에서 실습을 이행해야 했다.

문제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사회복지 실습 기관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실습 기관은 보통 본교가 있는 서울에 몰려 있었는데, 나는 실습을 가기 위해서 휠체어를 타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먼 곳까지 실습을 다니기가 어려웠다. 담당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습 기관 섭외는 개인의 몫이라고 받았다. 

실습 기관 섭외에 난항을 겪다가 다시 학기가 시작됐는데, 다행히 종강 무렵에 한 지역의 뇌병변장애인협회센터에서 가을 실습을 해도 괜찮다는 연락이 왔다. 

한 센터의 대표님은 나처럼 뇌병변 장애를 가진 여성이었다. 대표님을 보면 멋있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 실습을 하는 동안 실습 일지도 열심히 쓰고, 일지의 파일도 열심히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중간에 실수가 있어서 아쉬웠지만 다 신기하고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나의 주전공인 사회복지학을 배우면서 항상 하던 생각이 있다. 사회복지는 모든 약자에게 필요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과 장애인들에게 더더욱 필요하다. 


동기에 비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늦게 취득하는 편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 길을 걷고 싶다. 

나중에는 내 나이가 조금 더 든다면 여성과 장애인을 돌보고 연구하는 복지 전문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여성과 장애인들이 본인이 원하는 삶에 조금 더 잘 살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유월의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다음 화에 계속.

유월의 이메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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