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리뷰1

핀치 타래리뷰퀴어취미

<여자친구> 리뷰1

학원물에서 남자를 소외시키는 방법

꽃 중에 백합

여자친구, 갓자친구. 가수 여자친구 뿐만 아니라 ‘갓(God)’ 호칭을 듣는 건 만화에도 있다. 학원 로맨스물의 핑크빛 기운을 내는 작화와 '한녀(한국 여자)’의 리얼리즘을 한 데 보여주는 이야기. 만화 <여자친구> 다.

처음 <여자친구>를 보면 이제는 패턴화되어 역으로 이용되는,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로맨스 구조를 따른다. 주인공 영이는 밝고 착한 성격으로 또래들과 두루두루 친한 것과 달리 남자에게 인기가 없다. 문제는 영이가 남자를 정말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거다. 갓 입학한 고등학교에 기대되는 점은 오직 하나. 잘생긴 거로 유명한 백빛나를 볼 수 있다는 것. 여기서 만화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보통 두 가지다. 여자 주인공이 예뻐진 외모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밝은 성격 그 특유의 노련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포인트는 남자 주인공의 감정이다. 그런데 만화는 돌연 영이의 관심을 백빛나에게서 같은 반 '여자친구'인 한나에게 쏟는다. 자신과 달리 '아담하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진 또 다른 주인공에게로(극 중 한나는 백빛나의 완벽한 이상형이다).

이때쯤 되면 독자는 이 만화가 자신이 예상했던 학원 로맨스물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중 가장 재밌다고 생각되는 건, 남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던 영이가 실은 남자를 '덕질'하듯 좋아한다는 거다(실제 등장인물 소개에서도 영이의 아이돌 취향은 차은우다). 매번 진심을 다하는 덕질에 '내가 진짜로 널 좋아하나 봐. 이전과 다른 감정이야'하는 깨달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나'의 왕자님 백빛나가 한나에게 관심을 보여도 그 충격이 납득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영이가 보기에도 너무나 예쁜 한나는 질투의 대상이 아닌, '나'가 말하는 백빛나의 잘생김에 함께 호응해줘야 할 대상이다. 정리하자면 만화의 첫 시련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한나가 영이의 덕질에 불응하면서 생겨난다.


이외에도 <여자친구>가 이야기에서 남자(인물)를 소외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영이에게서 덕질을 벗어난 감정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인물 또한 한나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여자 선배를 짝사랑/동경하는 여학생 무리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 동감합니다 )


만화에서 영이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자 자신의 설렘을 여기저기 방출한다. 그리고 같은 무리가 된 한나의 반응을 기대해 보지만, 좋고 싫은 기색조차 나타나지 않는 걸 보고 서운함을 느낀다. 결국 한나에게 온 신경이 집중된 영이는 자신 앞에 앉은 남자를 갖은 욕과 트집으로 쫓아내 버린다. 상대방의 외모 품평과 맨스플레인 정도는 잘생긴 얼굴을 보고 넘어가 줄 수 있었던 영이가 데이트를 끝장내고 한나에게로 달려가는 씬은 둘의 '여자친구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만화에서 주요하게 나타나는 '팬클럽'은 백빛나를 따르는 여학생들이 아닌, 영이의 친구인 지은에 대한 사랑과 충성으로 뭉친 이선과 친구들이다. 흔히 여X여 팬클럽이라 하면, 여자만 다니는 학교이거나 머리가 짧고 운동 잘하는 여자 선배가 있는 설정이어야만 그려지는 법인데. 만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선의 무리가 백빛나를 견제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다. 여학생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왕자님도 이곳에 오면 ‘우리 언니 옆에 찝쩍거리는 X’이 된다. <사랑의 불시착>을 봐도 손예진과 서지혜 배우만 기억하는 우리(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여학생 무리의 등장이다.


( 오늘(3/15)까지 기록되는 박수 / 구독하기 / 핀 응원 은 정식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0_< )

<여자친구>(청건)는 레진코믹스에서 완결 회차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꽃 중에 백합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