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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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리뷰1

나를 믿어줘! 이건 되는 백합이야!

꽃 중에 백합

아마도 쓰고 있는 리뷰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봤을 작품일 거다. 유료 플랫폼이 아닌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된다는 조건도 있겠지만, 워낙 (트위터에서) 유명하니까. 여성 서사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은 외쳤을 <정년이>. 다른 이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건 괜히 제쳐두고 싶은 나의 이상한 심보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스토리, 드라마, 감성, 시대극 으로 소개되고 있는 <정년이>는 여성국극이 활발했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인간으로 여겨지지 못하는 건 과거도 지금처럼 마찬가지인데. 여성국극에서는 모든 역할을 여자가 맡는다. 여기서는 심청이도 여자, 이몽룡도 여자다.

여성이 일군 문화는 저평가되거나 기억되지 않기 마련인데, 그런 여성국극을 주제로 하니 만화는 독자들 사이에서 금세 유명해졌다. 더군다나 노력하는 사람도 여자, 능력 있는 사람도 여자, 권위를 가진 사람도 여자다. 주·조연을 비롯한 주변 인물가지 여자들이 대거 등장해서 관계 맺는 만화. 맨발로 뛰쳐나가 맞이해야 할 정도다.

이런 <정년이>를 백합 만화로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독자)는 작은 계기만 주어진다면 어떤 관계든지 퀴어하게 보는 훈련이 돼 있다(없어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구실이다).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아무리 건재해도 경쟁하는 여성 인물끼리 서로 눈빛만 제대로 나눈다면. 오케이. 출연한 영상을 모두 편집해 여X여 연애물을 만드는 건 순식간이다. 게다가 <정년이>은 애써 '착즙'하는 데 힘쓰지 않아도 되는 작품이다. 연재가 완료된 1부에서 정년이의 생활 반경에 머무는 여성만해도 국극단 내외로 수십 명이다.


만화에서 '공식 라인'은 정년-부용, 옥경-혜랑, 도앵-숙영, 고사장-아가씨 정도겠다. 나는 '공식'이라는 말을 소녀시대 팬픽을 보며 배웠는데(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다), 쉽게 말하면 수요와 공급이 월등히 많은 커플링이다. 인물끼리 보내는 시간과 사건이 많을수록 사람들의 호응과 지지도 높아지는 식이다. 이렇게 볼 때, 앞서 소개한 인물들은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으며, 댓글에서도 '이건 진짜다!'라며 검증된 커플링으로 통한다. 그러니 공식 라인으로도 손색이 없다.

먼저 정년과 부용은 첫 만남부터 흔히 도와주고, 구해주는 영웅으로 만난다. 남학생 여럿이 부용을 괴롭히는 상황에 정년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부용에게 손을 내민다(여기서 정년이가 속 시원하게 '영웅 노릇'을 하지 못하는 건 작품의 묘미다). 심지어 눈물을 닦으라며 손수건도 건네준다. 로맨스물의 구해주고, 울지 마요 서사를 다 해낸다. 이후로 부용은 정년에게 "나 권부용이야. 네 팬이 됐어. 앞으로 영원히 널 응원할래!"라고 선언해버린다. 그것도 활짝 핀 백합 꽃다발을 내밀면서.

( 그럴리가요! )


이후에도 계속되는 부용의 자신감 있는 들이대기로 정년-부용의 '주식'은 폭등한다(부용의 관심으로 정년은 여러 번 위기를 극복하기도 한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쑥스러워하는 정년이의 얼굴은 덤이다.


( 리뷰2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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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글 서이레 | 그림 나몬)는 네이버 만화에서 1부작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2부작은 오는 5월 4일부터 업로드 됩니다.

SERIES

<정년이>(서이레|나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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