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Does the Fox Say? 리뷰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왓더폭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수민이 첫사랑인 세주와 헤어지는 과정이 수민과 성지가 만나는 이야기만큼이나 대등하게 그려진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엑스가 돼버린 과거의 애인은 보통 주연 커플(수민-성지)의 사랑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할 때, 강력한 암시를 동반하며 등장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흔들되 훗날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러니까 만화의 초중반에서 중반 정도. 그런데 <What Does the Fox Say?>는 이야기의 초반부터 수민과 세주의 사랑을 회상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자주 비춘다(심지어 세주는 수민이와 헤어진 후에도 10년 동안이나 그 곁을 지킨다는 설정이다. 백세주 사랑해). 둘이 헤어지는 이유도 일찍 해소된다. 비밀도 반전도 아니다. 대략 3, 4회에 한 번씩 드러나는 둘의 과거는 쓴 커피에 설탕을 넣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섹스를 앞둔 시간에도 무언가 '걸리는 것'처럼 떠오른다. 마치 그 물건과 행위에 상대의 기억이 저장된 것인 마냥.
현재 시점에서 웃는 얼굴이 손에 꼽히는 세주가 수민이와 함께했던 과거에는 늘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는지. 분명 나는 수민-성지 커플에도 많은 지분을 두고 있었음에도 이대로 수민-세주의 과거 회상만 쭉 진행돼도 좋겠다는 바람을 정말, 자주 품었다.
다른 만화였다면 수민-세주를 소위 서브 커플로 얘기했을 텐데, 나는 두 사람이 지나간 사랑일 뿐 절대 2등 위치에 놓이는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왓더폭세는 레진코믹스에서 완결이 난 후 외전 본이 올라오던 중에 연재가 중지됐는데. 외전 회차가 수민과 세주의 과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걸 알았던 나는 연재 중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몇 년 뒤 카카오페이지에서 다시 <What Does the Fox Say?>가 연재됐을 때는 꼭 나만을 위한 당첨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연재분이 올라오고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감상은 '존버는 승리한다'와 '수민세주'에 대한 외침이었다. 얼마나 인물 간의 관계가 설득력을 가졌으면, 독자들이 모두 마음속에 수민-성지와 수민-세주를 동시에 품은 걸까. 나는 보이는 댓글마다 하트를 눌러대며 우리(독자)의 승리를 축하했었다.
4년 전 첫사랑을 못 잊어서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스스로 희망 고문했던 내게 (첫)사랑이라는 테마는 그렇게나 강력했다. 그리고 <What Does the Fox Say?>는 수없이 나를 대입할 수 있는 만화였다. 사랑이라는 기준이 사라지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던 나의 모습이 이들에게도 있었고. 세 사람이 자신만의 테두리를 가지게 된 비슷한 시기에 나도 더는 첫사랑을 기준 삼지 않게 됐다.
외전의 완결까지 모두 본 지금도 종종 왓더폭세를 본다. 이유는 다양한데.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거나, 야한 게 보고 싶어서. 혹은 재미가 보장된 작품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레진코믹스와 카카오페이지를 거쳐 봄툰(또는 리디북스)까지 구독을 이어가는 나의 행동이 앞선 이유들을 검증해주지 않나 싶다.
백합 만화 리뷰글을 쓴다고 했을 때, 이미 시작은 <What Does the Fox Say?>로 정해졌던 것처럼. 백합 만화를 시작하는 엘리트 코스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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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es the Fox Say?>(팀가지)는 봄툰과 리디북스에서 완전판(성인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카카오페이지에서 15세 개정판으로 완결 회차까지 열람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