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the Fox Say? 리뷰3

핀치 타래리뷰취미퀴어

What Does the Fox Say? 리뷰3

백합 만화를 시작하는 엘리트 코스

꽃 중에 백합

( 'What Does the Fox Say? 리뷰2'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왓더폭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수민이 첫사랑인 세주와 헤어지는 과정이 수민과 성지가 만나는 이야기만큼이나 대등하게 그려진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엑스가 돼버린 과거의 애인은 보통 주연 커플(수민-성지)의 사랑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할 때, 강력한 암시를 동반하며 등장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흔들되 훗날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러니까 만화의 초중반에서 중반 정도. 그런데 <What Does the Fox Say?>는 이야기의 초반부터 수민과 세주의 사랑을 회상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자주 비춘다(심지어 세주는 수민이와 헤어진 후에도 10년 동안이나 그 곁을 지킨다는 설정이다. 백세주 사랑해). 둘이 헤어지는 이유도 일찍 해소된다. 비밀도 반전도 아니다. 대략 3, 4회에 한 번씩 드러나는 둘의 과거는 쓴 커피에 설탕을 넣거나, 새로운 사람과의 섹스를 앞둔 시간에도 무언가 '걸리는 것'처럼 떠오른다. 마치 그 물건과 행위에 상대의 기억이 저장된 것인 마냥.

현재 시점에서 웃는 얼굴이 손에 꼽히는 세주가 수민이와 함께했던 과거에는 늘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는지. 분명 나는 수민-성지 커플에도 많은 지분을 두고 있었음에도 이대로 수민-세주의 과거 회상만 쭉 진행돼도 좋겠다는 바람을 정말, 자주 품었다.

다른 만화였다면 수민-세주를 소위 서브 커플로 얘기했을 텐데, 나는 두 사람이 지나간 사랑일 뿐 절대 2등 위치에 놓이는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왓더폭세는 레진코믹스에서 완결이 난 후 외전 본이 올라오던 중에 연재가 중지됐는데. 외전 회차가 수민과 세주의 과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걸 알았던 나는 연재 중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몇 년 뒤 카카오페이지에서 다시 <What Does the Fox Say?>가 연재됐을 때는 꼭 나만을 위한 당첨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연재분이 올라오고 사람들에게서 쏟아지는 감상은 '존버는 승리한다'와 '수민세주'에 대한 외침이었다. 얼마나 인물 간의 관계가 설득력을 가졌으면, 독자들이 모두 마음속에 수민-성지와 수민-세주를 동시에 품은 걸까. 나는 보이는 댓글마다 하트를 눌러대며 우리(독자)의 승리를 축하했었다.


4년 전 첫사랑을 못 잊어서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스스로 희망 고문했던 내게 (첫)사랑이라는 테마는 그렇게나 강력했다. 그리고 <What Does the Fox Say?>는 수없이 나를 대입할 수 있는 만화였다. 사랑이라는 기준이 사라지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던 나의 모습이 이들에게도 있었고. 세 사람이 자신만의 테두리를 가지게 된 비슷한 시기에 나도 더는 첫사랑을 기준 삼지 않게 됐다.

외전의 완결까지 모두 본 지금도 종종 왓더폭세를 본다. 이유는 다양한데.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거나, 야한 게 보고 싶어서. 혹은 재미가 보장된 작품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레진코믹스와 카카오페이지를 거쳐 봄툰(또는 리디북스)까지 구독을 이어가는 나의 행동이 앞선 이유들을 검증해주지 않나 싶다. 

백합 만화 리뷰글을 쓴다고 했을 때, 이미 시작은 <What Does the Fox Say?>로 정해졌던 것처럼. 백합 만화를 시작하는 엘리트 코스가 여기 있다.


( 박수 / 구독하기 / 핀 응원 은 정식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0_< )

<What Does the Fox Say?>(팀가지)는 봄툰과 리디북스에서 완전판(성인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카카오페이지에서 15세 개정판으로 완결 회차까지 열람이 가능합니다.

SERIES

<What Does the Fox Say?>(팀가지)

꽃 중에 백합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