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하세요> 리뷰2

핀치 타래리뷰취미퀴어

<안녕은 하세요> 리뷰2

대한민국 장녀 레즈비언들의 꽁냥거림

꽃 중에 백합

( '<안녕은 하세요> 리뷰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익히 밝힌 것처럼 내가 <안녕은 하세요>를 보며 웃기 시작한 건 영은과 보금이 만나면서부터다. 중학생 때부터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살았던 보금은 영은이 자신을 좋아했고, 지금은 레즈바를 오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보금은 아슬한 연애를 이어가는 상황. 마음이 쓰린 와중에도 영은이 보금을 보며 설렐 때마다 입을 읍!하고 다무는데. 감정이 입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하는 양 입을 꾹 다무는 얼굴. 흑심을 자제하려는 안영은은 너무나 귀엽다! 두근거림이 얼굴에 베시시 한 빗금으로 나타나는 순간에도 '눈 마주치지 마!', '설레지 마!'라며 자신을 다독이는 영은을 귀여워하는 게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에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영은이 화이팅!).

또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과정이 다 그렇지 않나. 상대가 한 눈에 내 안에 들어오거나, 쌓인 호감 위로 나의 문제를 덜컥 말해버리게 되는 일. 여태껏 털어놓지 못한 것들을 처음 서로에게 말하고, 힘을 나누고, 마음을 물어봐 주는 시간들이 계속해서 겹쳐질 때. 영은과 보금은 각자의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임에도 세상에 떠다니는 온갖 따스함을 서로에게 부어준다. 한 사람이 우울한 냄새가 나는 날에 그걸 알아봐 주는 것도 상대방이다.


이렇게 영은과 보금의 설렘 포인트를 한껏 다져놓았는데. 정작 내 핸드폰 사진첩 속 <안녕은 하세요> 캡처본 비율은 두 사람이 웃는 것보다 울 때가 더 많다. 만화, 글귀, 채팅 그게 무엇이든 좋은 걸 보면 캡처해서 지니는 나의 습관을 돌이켜 보면, 나도 만화를 보며 웃는 것보다 우는 순간이 더 많았나 보다. 여자라서 노출되는 폭력과 소외, 독립이 간절한 상황에서 연애도 안정을 주지 못하는 상황은 나 또한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다. 보금은 정국민을 피해 가출한 영은이 새롭게 자리 잡은 곳에서도 희롱을 당하자 물불 가리지 않고 남자를 쫓아낸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만화 속에서도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한편으로 나는 보금의 행동에 어떤 안도감을 느꼈었다. 여자 둘이서 해코지 하는 남자 하나를 못 당해낼 때마다, 나를 지켜줄 아빠(남자)를 떠올리는 건 꽤나 비참한 기분이니까.


"내 형편엔 안전이 너무 비싼 것 같아"

"도망치는 것과 버려지는 것. 그 사이는 어떻게 유지하는 걸까"


가정폭력으로 어릴 적부터 본가를 나와 살았던 보금은 옮겨진 지금의 자리에서 튕기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보금이 결국 이별을 맞게 될 때, 나는 몇 번이나 스크롤을 되돌려 가며 보금의 속마음을 캡처했다. 뭔가를 했다면/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라는 생각.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게 아닌가.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병원도 들럭거리게 된 나로서는 보금이가 외로움과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실현하게 됐을 때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감성이 충만한 새벽녘, 그렇게 만화는 내가 완벽한 완충재가 돼주었다.


서서히 회복이 필요한 관계와 영원히 단절해야 할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 만화가 관계를 맺고 끊어내는 방법은 지금의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사이다'다. 굉장한 현실 고증으로 대한민국 장녀 레즈비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안녕은 하세요>는 분명 'xx 죽어!'를 연발하게 되지만. 영은과 보금의 꽁냥거림은 죄가 없다. 두 사람이 안녕을 묻는 방식은 나에게 그랬듯 보는 이에게도 몸에서 하트가 내뿜어지는 경험이 될 거다(만화 속 영은과 보금은 서로를 통해 행복을 느낄 때마다 몸에서 하트와 꽃을 내뿜는다. 끝까지 귀엽다).


( 박수 / 구독하기 / 핀 응원 은 정식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0_< )

<안녕은 하세요>(검둥)은 저스툰, 봄툰, 리디북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미스터블루에서 완결 회차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SERIES

<안녕은 하세요>(검둥)

꽃 중에 백합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