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하세요> 리뷰1

핀치 타래리뷰취미퀴어

<안녕은 하세요> 리뷰1

여자로 살기 너무 힘들다

꽃 중에 백합

떠나고 싶다는 감각. 그건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이유다. 해야만 하는 일에 둘러싸여 정작 좋아하는 일을 할 여유가 없다고 느낄 때.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은데 허리와 골반이 쑤셔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날. 이런 순간마다 내가 '이거 하나만...!'하고 집어먹는 건 어김없이 백합 만화다.

언제든지 홀연히 떠날 수 있도록 가방 하나에 필요한 모든 걸 담아놓는 주인공. 영은의 행동은 이 만화를 (구독) 실패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2017년 연말에 연재를 시작한 <안녕은 하세요>와 내게 있는 또 하나의 기억을 끼워 맞춰 보자면. 나도 영은처럼 집을 떠나고 싶어 했다. 마음이 불안으로 콩닥거릴 정도로. 물론 청소를 잘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나는 영은이 짐을 싸둘 때,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스트레스를 있는 데로 다 받았었지만.

어린이집 보조 교사로 일하는 영은에게 집과 직장, 모임은 오래 있을 곳이 못 된다. 빠르게 요약하자면,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던 '남사친'(정국민)은 사귀는 게 당연하다는 듯 굴고, 어린이집에서 알게 된 남학생은 갖은 핑계를 대며 영은에게 찝쩍거리는 상황. 마치 한 판의 '이지혜 게임'을 하는 듯 영은의 생존을 시험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된다. 거기에는 가장 쏟아내고 싶은 엄마도 포함이다.

<안녕은 하세요>의 독자들은 영은을 대략 '대한민국 장녀' 캐릭터로 본다. 실제로 만화에서 영은은 첫째 딸이기도 한데. 사람들이 말하는 장녀는 집안의 우여곡절을 홀로 짊어지되, 가족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딸이다. 이렇게 살고 있다면, 여자들은 누구나 첫째가 아니어도 '장녀로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장녀는 장녀, 차녀도 장녀다.


독자들이 보기에 자신을 대입할 수밖에 없는 영은은 행복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실현해주듯, 어김없이 정국민을 피해 달아난 장소에서 영은은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 안영은과 박보금. 드디더 두 사람의 풀네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그것도 서로의 입을 통해. 꺅). 그랬다. <안녕은 하세요>는 만화 자체가 "안영은 하세요"라며 영은을 영업하고 있었던 거다.

세상에 쓴게 있으면 단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영은의 보금자리) 보금은 우리(독자)에게도 만화를 계속 볼 수 있게 해주는 보금자리였던 거다.


( 리뷰 2으로 이어집니다 )

( 박수 / 구독하기 / 핀 응원 은 정식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0_< )

<안녕은 하세요>(검둥)은 저스툰, 봄툰, 리디북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미스터블루에서 완결 회차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SERIES

<안녕은 하세요>(검둥)

꽃 중에 백합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4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상속인 조회 서비스 조회 완료 후 한 달 정도는 은행과 보험 정리에만 매달렸다. 사실 지점이 많이 없는 곳은 5개월 여 뒤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등을 정리했고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주민센터 등을 방문했다. 상속인 조회 서비스에 나온 내역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철 해 두고 정리될 때마다 표시해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현금수령인지 계좌이체인지 등)를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다. 주민..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