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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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리뷰2

백합 커플링과 여성 관계망

꽃 중에 백합

( '<정년이> 리뷰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그런가 하면 옥경과 혜랑은 '찐'으로 통한다(주식보다는 적금이라는 비유가 알맞지 않을까). 국극단의 남역과 여역 주연으로 활약하는 이 둘의 모습이 공연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은 더욱더 매력적이다. "오늘은 일찍 와. 새로 산 입욕제 향기가 아주 좋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을 명장면. 일찍부터 만화에 백합 기운을 굳게 다져준 씬이다. 국극의 유망주로 각각 정년이와 영서를 뽑는 두 사람이 후에 어떤 차이를 빚게 될지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던 만큼 '숙맥' 정년이의 눈에도 남사스러울 정도의 사이는 계속될 것 같은 예감이다.

이들과 못지않게 강한 신뢰를 나누는 도앵과 숙영은 내가 가장 기대하는 조합이다. 동기이자 서로의 바람과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둘은 상대를 북돋아 주는 존재다. 여성국극이라 해도 여역과 남역의 성별 권력은 그대로인 상황. 여자가 왕이 되는 이야기를 꿈꾸는 도앵과 그를 새로운 주연이라 굳게 믿는 숙영의 캐미는 둘을 포함해 국극단 전체를 전복시킬 만한 짜릿함을 준다. 집안의 경조사도 아는 마당에 너(도앵)의 연기를 보고자 국극단에 있는 거라는 숙영의 고백까지. 더는 말이 필요 없는 사이다.

( 저도요!!! )


게다가 고사장과 아가씨의 사이에서 마님이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줬다는 건 두 사람의 문화생활일까, 연애 생활일까(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어른이 죽고 셋이서 살고 있다는 마님과 아가씨, 고사장은 하나의 대안 가족 형태다. 이들이야말로 만화 속 세계에서 가부장제 가족 구조와 성별 역할을 가장 많이 무너트린 관계가 아닐까. 

실제로 고사장은 긴 머리를 중절모 안에 넣고, 클래식한 쓰리피스(재킷, 베스트, 바지)에 넥타이를 갖춘 신사 복장으로 연출된다. 거기에 주인공 정년이를 포함한 옥경, 도앵, 소복 같은 여성 인물의 숏컷 등 여성을 하나의 외형으로 그려내지 않는 방식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소위 백합/GL 에서 '긴 머리'와 같은 '여성스러운' 인물만 줄지어 등장할 때 생기는 아쉬움이 있는데. <정년이>는 그걸 또 해낸다.


여기에 마이너 라인을 또 셀 수 없이 많다. 크게 두드러지는 건 정년-영서로 둘은 만화에서 라이벌 격으로 대치되는 관계다. 그런데 <정년이>의 관계 맺기는 라이벌 사이에서 벌어지는 레파토리를 순순히 승인하지 않는다. 되려 상대의 능력을 인정한 후에는 자신과 같은 조건에서 실력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인정하는 사람,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필시 '나'의 마음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정년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영서가 위의 과정을 밟아가는 모습은 까칠한 인물(영서)이 눈치 없이 착한 인물(정년)에게 점차 호감을 가져가는 그것과 같다.

특히나 정년이가 영서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자신의 스카프를 매주는 장면은 나의 마음속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핸드폰으로 만화를 볼 때, 상대적으로 좁은 가로 폭 대신 세로 폭으로 그림을 회전 시켜 연출한 이 씬은 정년이의 따뜻한 표정과 영서의 놀란 얼굴을 한 컷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더 최고라 말하고 싶다(좋은 건 다시 봐야죠. 33화 중반부입니다).

이외에도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같은 방을 쓰는 동기라는 메리트를 지닌 정년-주란. 옥경 앞에서 뺨을 여럿 붉히던 주란이(옥경-주란)와 정년이의 어머니인 채공선 이야기만 나오면 진심이 돼버리는 단장 소복(공선-소복) 등 만화는 겹겹이 관계망을 이루고 있다.


1부작 만으로 수 갈래의 라인을 만들어낸 <정년이> 속 여성 관계들은 새로운 국극 공연을 올리는 2부작에서 더 복잡해지고 두터워질 거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마다 휴재인 걸 알면서도 웹툰 판에 들어간다. 실패가 없는 나의 주식 <정년이>를 확인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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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글 서이레 | 그림 나몬)는 네이버 만화에서 1부작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2부작은 오는 5월 4일부터 업로드 됩니다.

SERIES

<정년이>(서이레|나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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