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the Fox Say? 리뷰2

핀치 타래리뷰취미퀴어

What Does the Fox Say? 리뷰2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힘들구나

꽃 중에 백합

( 'What Does the Fox Say? 리뷰1'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야기는 헬로 스튜디오라는 게임 회사에 들어간 '성지'가 팀장인 '수민'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첫 입사 날부터 당혹스러울 정도로 예쁜 성지의 외모는 회사 동료들을 포함해 내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였다. 날 선 말투와 달리 초반부터 성지에게 샌드위치에 케이크 등 각종 조공을 바치는 수민도 만화에서는 귀여운 여우로 묘사된다. 이 두 사람이야말로 '그림체가 다르다'라는 말이 양쪽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사용된 사례가 아닐까? 둘의 외형은 여성애자 사이에서도 공통으로 인기 있는 고양이(성지)와 강아지(수민)을 닮았다.

성격은 또 정반대. 한 번도 사람을 보고 가슴 뛴 적 없는 성지와 다르게 수민은 연애도 섹스도 다분한 경험을 가졌다. 외모, 성격, 주변 환경 중 뭐 하나 일관성을 이루지 않는 캐릭터 설정은 여러 장르에서 내세우는 공식과도 같은데, 이게 레즈비언 캐릭터에 쓰이니 그대로 신선함이 느껴졌다. 좋은 의미의 반전 매력은 현실과 가상 어디에서나 상대의 마음에 불쑥 들어서는 포인트였던 거다.


<What Does the Fox Say?>가 더욱 인기였던 건, 공급 자체가 적었던 백합 만화 중에서도 19금을 달고 있는 만화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심지어 모 레즈비언 채팅앱에서 "왓더폭세 보는 사람?"과 같은 메시지를 보기도 했다(왓더폭세는 What Does the Fox Say?의 줄임말이다. 원제목 다음으로 많은 검색 결과를 볼 수 있다). 이 좁고도 넓은 레즈비언 시장에서 취향, 취미 등으로 공통점을 찾는 건 종종 보지만 백합 만화로 사람을 찾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9금을 내세우는 만화들을 둘러보면 대체로 인물이 새로운 체위를 시도하는 게 최대 과제처럼 주어진다. 계속해서 다음 화로 넘어갈 퀘스트를 깨는 격. 나는 이전과 '똑같은' 섹스가 아닌 것에 그날의 기분과 몸컨디션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만화에서는 비슷한 관계/체위가 바로 독자의 지루함으로 직행이라도 하는 듯 인물들이 '새로움'을 위한 쾌락에 열성으로 그려졌다. 

왓더폭세는 화려한 연애, 섹스 경험을 자랑하는 수민이 덕에 '이전과 다른' 섹스에 대한 '만족'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레 채워진다. 게다가 '저러면 아플 거 같은데?', '혼자 막 가는구나...' 같이 딴생각이 들게 하는 컷이 없다. 인물간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애무를 공들여서 하거나, 어느 정도의 흥분 상태에서 출발하는 등 섹스 씬의 시작이 달라지니 몰입하는 건 순식간이다. 비교적 빨리 (결제해서) 볼 수 있는 12화를 예로 들면, 울먹이는 수민과 그를 달래려는 옛 애인이 등장한다. 여기서 "수민씨..."라며 다독이던 목소리가 섹스 중 무언가를 애원하는 목소리로 이어지는 장면은 정말 봐야만 알 수 있는 왓더폭세의 강점이다. 흡입과 삽입 등 섹스 과정에서 나타나는 표정, 대화, 자세를 세세하게 그려내는 이 만화가 생략으로 보여주는 아찔함. 침이 꼴깍 넘어갈 시간까지 계산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 리뷰 3으로 이어집니다 )

( 박수 / 구독하기 / 핀 응원 은 정식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0_< )

<What Does the Fox Say?>(팀가지)는 봄툰과 리디북스에서 완전판(성인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카카오페이지에서 15세 개정판으로 완결 회차까지 열람이 가능합니다.

SERIES

<What Does the Fox Say?>(팀가지)

꽃 중에 백합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