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여섯 번째

핀치 타래여성서사페미니즘

[제목없음] 여섯 번째

우리는 이제 미쳐도 되지 않을까?

제목없음

나는 확실히 분노가 많다. 사실 쌓여있다. 하지만 그동안 화를 내면 내가 지내고 있는 단체 속에서 규칙 혹은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잘 내지 않았다. 그리고 화를 내는 동안 내뿜는 감정 소모가 너무 커 몸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다른 방법으로 엿을 주려고 짱구를 굴리곤 했다. 하지만 짱구를 굴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주 이전에 더운 여름날이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날, 나는 끈 나시에 쉬폰 소재의 치마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그리고 친구들과 만나고 있다고 그 때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 사람은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나시를 입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다. 그렇게 입으면 어쩌냐는 식으로.

노출이 있는 옷을 입으면 다른 남자가 보기 때문에 안된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내 머릿속은 물음표 백만개가 되었다. 처음 겪어보는 당황스러움이었다. 

1. 내가 입는 옷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게 가장 화가     났다.

2. 다른 사람이 봐도 뭐 어쩌라는거지. 그렇게 보는 사람이 이상한거 아닌가?

3. 나를 그저 성적대상화로 보는거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아주 지랄발광을 하면서 화를 내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사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 믿음, 애정이 다 짜게 식어버렸다. 

조금 더 미쳐서 더 지랄발광을 하지 못한게 아직도 억울하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분노를 너무 참고 있었으며 때때로 화를 내야 한다고. 

어릴적 부모님이 여자애니까 무조건 모든 옷, 물건들이 다 핑크색이었다. 나는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병적으로 싫었다. 그래서 오히려 무채색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핑크는 잘못이없다. 그렇게 이미지가 자리 잡아버린 이 세상이 잘못된거다. 나는 그렇게 핑크를 미워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려고 노력중이다. 

나는 다리를 잘 오므리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부모님이 여자애가 왜 이렇게 다리를 쩍쩍 벌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차셨다. 분명 내 맞은편 남자는 옆에 사람들이 불편한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데 내가 벌려봤자 얼마나 벌렸을까. 그래서 일부러 더 오므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리를 쩍쩍벌리고 있는 남성 옆에 앉으면 일부러 오므리게 하려고 나도 열심히 벌렸다. 

유치한가? 유치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나는 화를 내야겠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이 1.8일에 1명씩 남편 혹은 애인에게 죽는다고 한다. 단편적인 연구 보고서일지는 모르나 사실 나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온다. 언제든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 버릴 수가 없다. 당장 내일 누군가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언제나 이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할까? 조신하게 행동해야 할까? 몸을 꽁꽁 싸두면서 옷을 입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할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또한 지금보다 더 미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더 화를 내도 된다. 화를 내야만 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 수는 없다. 

1908년에 거리로 나갔던 여성들의 마음으로 조금 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더 소리를 내야만 한다.

SERIES

제목없음

더 많은 타래 만나기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4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상속인 조회 서비스 조회 완료 후 한 달 정도는 은행과 보험 정리에만 매달렸다. 사실 지점이 많이 없는 곳은 5개월 여 뒤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등을 정리했고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주민센터 등을 방문했다. 상속인 조회 서비스에 나온 내역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철 해 두고 정리될 때마다 표시해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현금수령인지 계좌이체인지 등)를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다. 주민..

세 사람

세 사람

이운

#치매 #여성서사
1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고 지갑은 어느 가방에 둔 건지 매번 모든 가방을 뒤져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우리 나이 대라면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을 때 그들까지도 잊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는 수영을 다녀오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바지가 젖을 것은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길가에 털썩 주저앉..

어머니는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딸'이 되고싶은 딸의 이야기

설화

#여성서사
"엄마~"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내가 엄마같다고. 하지만 이렇게 엄마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불려지니 더욱 비참하고 씁쓸했다. 딸로서 행동할 수 있는 자그마한 가능성마저 먼지가 되어서 저 한마디에 그러모아놓은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껏 자라오면서 의지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중국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 겸 학교체험을 가는데, 배를 타기 전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스불 잘 잠그고 문 단속 잘하..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