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작은 아씨들>을 보았다. 보면서 아마 다른 이들도 각 캐릭터에 한 명 정도 이입되어 보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적 나는 베스와 같이 부끄러움이 많고 다른 사람 뒤에 잘 숨었다. 남자는 무서운 존재였으며 어른이 될 때 까지 누군가와 만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크면서 조와 로리처럼 나와 잘 맞는 남자 아이들도 있구나 라고 느끼면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래도 내 안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유교걸이 조금씩 발동되어 '학생일 때는 공부, 연애는 대학교에서 가서!' 라는 이상한.. 신념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유교걸은 그러면 안돼!'
웃기고 자빠졌다.. 유교걸 어쩌구저쩌구 거리면서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다가 대학은 못가고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눈이 뒤집혔다고 해야할까?
- 너무 마음에 들었다. 보는 순간 반했다. 외형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덩치에 비해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짜슥.. 귀여웠다. 그리고 우리는 사귀었다. 수줍게 뽀뽀만 하고 헤어진 그와는 지금은 살아 있는지, 뭐 하는지. 사실 얼굴도 기억이 안난다. 10년이 지난 지금, 넌 어디서 뭘 할까? 잘 살아라
그리고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 입학하는 순간 저 사람이라면 뭔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우리는 사귀었다. 내가 정말 정말 좋아했다. 나는 조 마치 처럼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라면 메그가 선택한 길을 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너무 좋아한 걸 상대방은 모를정도로 표현을 못했다. 어쩔 수 없는 베스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상대방이 표현하면 나는 부끄러워서 꼭 뒤로 물러나고 숨었다. 상대방은 지쳤을 것 이다. 그 점이 아직도 많이 미안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 사람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지금도 마음 속으로 응원한다. 항상 잘 지내길 바라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존재하는 친구. 나는 20%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며 자책 할 때면 200%의 용기를 스스로 가질 수 있게끔 만들어준 친구.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고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꼭 인사를 나누고 싶은 친구. 연대의 동지였던 친구. 고마워.
그리고 몇 년은 나에 대한 자책을 하며 연애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로웠다. 막 외로워서 슬퍼! 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 그리고 그를 만났다. 나를 너무 좋아해줬다. 상대방이 좋아해준만큼 나도 똑같이 좋아해야 하는데 슬프게도 똑같진 않았다. 분명 좋았겠지. 좋았던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지 않은 날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이 만남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를 구속하고 결혼하기 싫은데!!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면서 미래에 태어날 아이의 이름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 라며 말하는데 사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태어나지도 않을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가기 싫었다. 나는 나와 함께 가부장제를 박살 시킬 수 있는, 아니 박살은 못내더라도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 사람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슨 옷을 입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을 원했다. 원하는 바가 서로 달랐고 나는 그 요구에 응해줄 수 없었다. 이후에 오히려 나는 답답했던 알을 깨고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너도 어딘가에서 잘 살길 바란다.
자유를 갈망하고 얽매이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이 태도와 행동에 누군가가 함께 해주면 좋고, 뭐 안해줘도 상관없었다. 나는 혼자서도 즐거웠고 잘 지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그냥 마음일 뿐 이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는건 아니다. 그래서 조가 로리의 고백을 거절한 부분이 참 좋았고, 그 후의 조가 후회하는 것도 좋았다. 후회도 삶의 일부분이니까.
나도 매일매일이 후회의 연속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인간은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인걸. 그래도 내가 이끄는 대로 삶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좋은 것 중 하나다.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과거의 나와 만났던 그들에게 한 마디라도 남길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