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성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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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2)

나는 졸라대는 남성들이 제일 무섭다.

김GIRL래

폭력적이었던 첫 남자친구와 이별을 겪은 후, 3개월 뒤 다시 애인이 생겼다. 내가 상처를 입은 이야기를 들으며 날 위로하던 그였다. 여자에게 폭력을 쓰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며, 날 꼭 행복하게 해준다는 말을 했다. 그런 그조차 내가 섹스를 거부하면 아쉬워하고 짜증을 냈다. 데이트의 마무리는 꼭 DVD방이나 모텔이어야 했으며, 아무도 없는 동아리방에서도 내 동의 없이 내 몸을 만지고 또 만져댔다. 그만 하라고 부탁하면 이런 것조차 못 들어주냐며 삐지는 게 다반사였고, 내가 피곤해서 오늘만 그냥 집에 간다고 애교를 떨면 그보다 더 심한 애교를 부리며 한 번만 하자고 졸라댔다. 잠깐이면 된다고, 금방 끝낸다고 하는 그의 약속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남자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해서 모든 사람에게 불편한 티를 냈고, 밤 11시가 넘어가는 날이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건 널 위해서 하는 잔소리라며, 남자친구로서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하며,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지 아쉬워했다.

그와 헤어지게 된 건, 그와 더 이상 섹스를 하고 싶지가 않아서, 사귀는 건 사귀되 한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였다.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부여잡더니 소리를 마구 질러대기 시작했다. 섹스를 더 이상 못한다는 생각이 힘겨웠는지,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는지, 아니면 내가 갑자기 미워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가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에게서 바로 도망쳐버렸다. 전 애인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에 온 몸이 떨려왔다.

그 이후, 그는 1-2달간을 연락하며 괴롭혔다. 어떤 날은 본인이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가 하면,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욕을 퍼부을 때도 있었다. 내 친구들의 연락처를 어떻게든 알아내서는 연락해서 내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얼굴만 아는 선배들이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왜 이 사람이 본인에게 연락하냐며 불편한 티를 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그의 태도는 곧 돌변했다. 나는 과 내에서 걸레가 되어있었고, 나야말로 본인 뒤에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장본인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협박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눈에 보이면 죽여버린다, 밤길 조심해라. XX년.

그가 내 친구들 앞에서 내 목을 조른 건 학교 축제날이었다. 인파속에서 날 발견한 그는 나에게 다가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내 뒷담을 까고 다니니까 좋나? 그렇게 내 욕을 많이 하고 다녔다며? 눈에 띄지 말라고 했는데, 선배 말이 X같이 들리나? 쳐 맞아야 정신이 차려지겠구나? 웃어? 이 상황이 웃겨? 그가 내 목을 조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 목을 분지를 것처럼 아귀에 손이 들어갔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를 말렸다. 후배들이 그에게 웃으며 진정하라고 달랬다. 여자에게는 손도 안 대는 게 원칙인데 내가 얼마나 나쁜 X이었으면 손이 먼저 나갔겠냐며, 이번만 봐준다며 으름장을 놓고 돌아섰고, 목에는 빨간 손자국이 남았다. 얕은 기침이 나 콜록거렸다.


그 이후 사귀었던 애인들 역시 다 같은 패턴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났던 남자친구는 내가 헤어지고 싶다고 말하자 인적 드문 곳에서 목을 졸라 날 기절시켰었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 온 몸에는 멍이 들어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병원에서 말기 암 투병중이셨는데, 본인의 인맥으로 내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 그 병원에 아는 사람이 몇 명인 줄 아느냐, 링거에 독을 탈 것이다, 나 때문에 내 아버지가 죽는 거니까 죄값을 받는다고 생각하라며 아버지 목숨을 담보로 협박을 하기도 했다. 폭력 전과도 없고, 그 이전엔 여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는데, 본인을 폭력적으로 돌변하게 만든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개인 사업을 했었던 남자친구와 오픈된 관계(Open Relationship: 사귀는 사람이 있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성관계하는 걸 허용)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고 생각해보길 원해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그는 그걸 정신병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화를 나름 주체한다고 옆에 있던 생수를 내 얼굴에 뿌렸다. 며칠 뒤에는 뺨을 맞아 입 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본인과 사귀면서 내 이런 성향을 고쳐보자고 했다.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서 몰래 바람을 피우면, 심문을 해서 알아냈다. 바람을 피운 걸 알게 되는 날에는 밥상을 엎고 상다리를 부러트려, 부러진 상다리로 내 머리를 때렸다. 맞으면 다른 남자 생각이 안 날 거라고 했다. 그 역시 여자를 처음 때려본다고 했다. 그 역시 맞바람을 피기 시작했다. 본인이 맞바람을 피우는 건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우게 된 거라고, 내가 이 성향만 고친다면 본인도 바로 그 여자와 헤어질 거라고 했다. 그냥 이젠 그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날 너무나 사랑해서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고 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바로 헤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날 고치고 싶고, 그래서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런 내 성향을 걸레라고 불렀다. 그는 이해가 안 될 때 나에게 오줌을 싸며 조롱했다. 한참을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제발 변하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그의 큰 손이 내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하면, 머리가 웅웅 울렸다. 손찌검이 시작되면 눈을 감고 현실 도피를 했다. 어느정도 맞아주면 화가 풀리곤 했다.

더 이상 맞다가는 정말 내가 죽을 것 같았던 날이 있었다.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문자로 주소와 상황을 알렸다. 약 15분 후, 경찰들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는 이런 일로 왜 경찰을 불렀냐고 다그치며, 문을 열어주었다. 남자 경찰 두 명이었다. 그들은 전쟁터인 집을 보고 경악했다. 가정폭력은 안 된다고 했다. 말로 푸시라고 했다. 내가 울먹이며 이 사람을 제발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젠 말로 풀 거라고, 안심하고 돌아가시라고 했다. 경찰들은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애인이 다시 한 번 폭력적으로 나오면, 그때는 경찰서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애인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고 구두 약속을 받았다. 나에겐 애인이 다시 폭력을 쓰면 신고를 하시라고 말한 후, 그들은 돌아갔다. 난 좁은 공간에 다시 그와 단 둘만 남겨지게 되었다. 다음 날, 난 그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도망쳤다.


내가 사귀었던 애인들만 내 목소리를 무시하며 본인이 원하는 바를 조르거나,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폭력적으로 변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만났던 거의 모든 남성들은 ‘여성이 ‘아니’라고 했을 때, 그 ‘아니’를 단 한 번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내 ‘아니’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은 떼를 쓰며 졸라댔다. 떼가 통하지 않으면 화를 냈다. 화를 내도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썼다. 안타깝게도, 많은 남성들이 그랬다. 그렇게 폭력을 학습하게 되었다. 폭력을 피하고 싶다면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해 주는 게 제일 좋았다. 그렇게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었다.

과 특유의 위계질서를 빌미로 나를 계속 술자리에 불러내어 집에 못 가게 하는 선배가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한 잔만 더, 한 잔만 더라며 졸라댔다. 선배의 말이 우습냐고 혼내기도 했다. 그는 결국 나를 그의 자취방에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끝내고 택시를 혼자 타고 집에 가는 길, 택시기사가 물어보는 개인적인 질문들에 웃으며 대답하다, 그게 호감인지 착각한 그는 잠깐이면 된다며 차를 세우고 날 강간했다. 어떤 남자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섹스 자세가 불편해서 그만하자고 몇 번을 말했다가, 결국 너무 아파서 울음을 터트리고 제발 그만해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자 그제서야 당황하며 섹스를 그만두었다. 이게 울 일이냐며, 아팠으면 진작에 그만하자고 말하지 왜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되려 묻는 그였다. 나에게 호감을 가진 남자와 어쩌다 함께 과 MT를 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자, 내가 잘 때 옆으로 몰래 넘어와 한동안 내 몸을 더듬었던 적이 있었다. 서로 호감인 사람과 모텔을 갔다가, 그가 너무 술에 취해 위험하다고 느껴,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몸을 배배 꼬으며 주먹을 꽉 쥐고는 남자가 흥분을 하면 너무 참기 힘들다고, 나를 만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해서, 그 즉시 옷을 입고 바로 모텔에서 나온 적이 있다. 섹스 후 잠에 곯아떨어진 내 얼굴에 성기를 들이밀며, 섹스하러 만났는데 왜 계속 자느냐고 일어나라고 요구한 남자도 있었다.


셀 수 없는 남성들에게 ‘아니오’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내 ‘아니오’를 무시한 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해버렸다. 그냥 할 수 없으면 몰래 했다. 몰래 할 수 없으면 욕을 했다. 안 대줄 거면 꺼져, 못생긴 게. 그래도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폭력을 썼다. ‘아니오’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폭력에 순응했다. 거짓말을 함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원하는 걸 주고 달랬다. 살아남고 싶어서, 그 편이 더 안전하니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두려웠다. 특히 아는 남성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밤에 혼자 걷는 것보다, 데려다준다고 하는 남성이 더 무서웠다. 괜찮다고 하면 화를 낼까봐. 여자 혼자 해외여행을 하는 것 보다, 남성 동행을 거절하는 게 더 무서웠다. 괜찮다고 하면, 본인을 뭘로 보는 거냐고 되려 욕을 할까봐. 그래서 난 ‘아니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난 아직도 미안하고 두렵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내 상황을 듣고도 못 믿어 했다. 한 두 명만 폭력적이라면 운이 나쁜 건데,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손을 댄 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냐며,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난 솔직했을 뿐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사람이 이렇게 폭력에 익숙해지게 되면 폭력을 내재화하게 된다.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어느새 폭력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가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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