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나는 여성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다.
나는 남자로 패싱되길 원한다.
하지만 남자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성폭행 피해자이다.
하지만 섹스가 포함된 BDSM을 즐기기도 한다.
나는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싶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단물을 빨아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는 나에게 기대되는 여성상을 거부한다.
하지만 사랑받기 위해 매일 애인에게 밥을 차려준 적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명령받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애인이 명령할 때 섹시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열린 관계(Open Relationship: 애인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걸 허용)가 좋다.
하지만 때로는 질투하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나는 여성들과 얘기할 땐 여성할당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남성들 앞에서는 여성할당제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화장을 하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 화장을 한 내 모습이 너무 멋져 보일 때가 있다.
나는 노브라로 생활한지 6년이 다 되어 간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어깨를 쭉 펴 내 맨 가슴이 드러나 보이는 게 아직도 부끄럽다.
나는 몸의 털을 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살색 스타킹에 긴 다리털이 보이면 무의식적으로 위축되고 만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며 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하는 상황이 언제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저 웃어 넘길 때도 있다.
나는 성적 대상화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서는 성적 대상화 되어도 좋다.
나는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나는 여성이지만, 동시에 여성이고 싶지 않기도 하다.
나는 섹스가 역겹지만, 동시에 섹스를 하고 싶기도 하다.
나는 나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여서 감사하다.
모순적인, 너무나 모순적인
그래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위로하는 소녀, 다친 소녀,
성적인 소녀, 김걸래의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