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스스로 못생긴 걸 알았던 나는 남성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 매우 노력했었다. 기타를 잘 치거나 노래를 잘 불렀던 교회 오빠들의 뒷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고, 단 둘이 있는 걸 특권으로 여겼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남성과 단 둘이 있는 상황에 놓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겼었다. 적어도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대학 신입생 시절, 첫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우린 동아리방에서 만나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종교, 철학, 문화에 대한 얘기를 몇 개월간 나누었고, 나보다 2년 선배였던 그는 내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지, 사귀자고 말해왔다. 난 인생, 연애와 섹스에 있어서 이제야 처음을 겪는 새내기였고,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겪어본 그에게 난 급속도로 빠져들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야 보니까 그가 나에게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했단 걸 깨달았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다. 난 그저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가 내 외모를 지적하면 그가 원하는 대로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처녀는 처음부터 가르칠 수가 없어서 사귀지 않는 게 본인 원칙인데, 나라서 특별히, ‘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여자친구가 될 수 있는 게 너무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첫 섹스는 그가 머물던 기숙사 침대에서 치렀다. 피가 나고 아팠다. 그는 프로라며 콘돔을 쓰지 않았고, 질외 사정을 했다.
20대 초반, 그와의 연애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든든했고, 똑똑했다. 그는 문학을 전공하며 시를 써서 나에게 선물을 해 주곤 했었다. 많은 선배들에게는 믿음직스러운 후배였으며, 내 또래들에게는 멋있는 선배였다. 그는 길을 걸으며 우리를 지나치는 교수님, 교직원, 환경 미화원, 경비원 분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고, 그 분들 역시 내 애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주변엔 언제나 빛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가 그의 애인이었던 게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나에게 처음 소리를 지르며 날 잡아 흔든 건, 내가 빚을 진 친구에게 선물을 보낸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미술을 전공하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가벼운 디자인을 부탁했고, 친구는 흔쾌히 무료로 도와주었다. 그게 너무 고마웠던 나는 그가 좋아하던 모찌떡 6개들이 세트를 인터넷으로 배송시켜 주었는데, 그걸 발견한 애인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운동부였기 때문에 나보다 덩치가 세 배는 더 컸고, 키도 두 배는 더 컸었다. 그런 그가 내 앞에서 야수같이 갈갈이 뛰며 때릴 듯 말 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걔랑 섹스하고 싶은 거냐고, 아니면 걔가 너랑 섹스하고 싶은 거라고, 걔를 좋아하고 있냐며, 걔가 널 좋아하냐며, 걔랑 주고받은 문자나 이메일을 다 공개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문자를 확인해도 아무 내용도 없자, 내 핸드폰을 벽에 던지고는 걔랑 섹스하고 싶은거 맞다고, 아니면 이성에게 그런 선물을 해줄리가 없다면서 몰아부쳤다. 몇 시간의 실랑이를 벌이다, 그는 섹스로 화해를 요구하고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툭하면 화를 냈다. 내가 너무 정신연령이 어리다는 이유에서, 배려심이 없다는 이유에서, 우리 관계를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에서, 이성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이유에서, 본인에게 시간을 더 많이 쏟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내가 게으르고 이기적이라서, 그가 싫어하는 사람을 나도 싫어하지 않아서, 본인을 위해 더 이상 꾸미지 않아서, 피곤하다고 말해서, 연락이 안 돼서,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아서, 그가 원하는 대답을 몰라서, 그 외의 많은 이유들로 나에게 먼저 이별을 고하며 내 사랑을 시험했다. 싸움에 지쳐 헤어지자는 그의 말을 수긍하면 내 사랑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느냐고 다그쳤고, 수긍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자격으로 헤어지지 말자는 말을 하느냐고 했다. 그와 싸우면,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난 그렇게 믿었고, 그도 그렇게 믿었다.
화를 안 낼 때면, 그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공개적으로 애정표현도 마음껏 하고, 요리도 자주 해 주었다. 우리가 데이트할 때 좋겠다며 차를 사고는, 차 대출금을 갚기 위해 새벽에 택배 상하차 알바를 시작했고, 나를 위해 이렇게 희생한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알리고 다녔다. 그는 내 생일 선물로 당시 유행하는 닌텐도를 사 주었고, 그의 가족에게도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살 미래를 그렸고, 나 역시 그에 동조하곤 했다. 나 역시 그를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그 외에는 아무도 날 사랑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날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하고, 계속 상처만 주는 모자란 나를 계속 용서하고 사랑해주는 건 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구속이 곧 사랑이었다.
그러다 한 선배를 만났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마르고 차분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마침 난 노트북이 고장났었고, 고장난 노트북을 고쳐줄 사람을 친구가 소개해준 게 관건이었다. 우리 둘 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렸었다. 서로 번호를 교환하고, 간간히 문자를 보내곤 했었다. 우연하게도 우린 그 다음 학기에 같은 교양 예술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 때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고, 과제를 빌미로 자주 만나고는 했었다.
애인과 함께 있던 한 주말, 선배가 나에게 뭐 하냐고 문자를 보낸 걸 애인이 보게 되었다. 애인은 이 사람은 누구냐며 불같이 화를 냈고,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말에 문자를 보내지 않을 거라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제껏 내가 과제를 함께 해온 사람이 이 선배인 걸 알게 된 그는 처음으로 내 몸에 손을 댔다. 여자는 손 끝 하나도 안 건드리는 게 자기 원칙이었는데, 내가 얼마나 잘못을 해서 그를 화나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하겠냐면서 모든 걸 내 잘못으로 몰고 갔다. 그날 밤, 그와 섹스로 화해하며 그 선배 생각을 했다.
다음 교양 수업에서 그 선배를 만나, 내 몸의 멍을 보여주었다. “이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야.”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와 헤어지는 건 어때?” 그럴 순 없었다. 애인을 사랑하는 건 분명했으니까. 그날 밤, 애인이 새벽에 택배 상하차 일을 하러 간 사이, 선배가 날 찾아와 기숙사 앞으로 불러냈다. 우린 한참을 걷다가 손을 잡았고, 벤치에 앉아 키스를 했다. 배덕의 키스는 달콤했다. 키스란 이렇게 아찔한 것인가 생각했다. 애인과의 키스는 언제나 거칠고 일방적이었는데, 키스란 이렇게 녹아내리는 것이었구나.
애인에게 헤어짐을 고한 그 날 오후, 내 모든 물건이 부셔졌다. 내가 아끼던 그릇과 컵이 문에 부딪혀 깨져 튄 파편이 내 살갗에 박혔고, 내 머리채는 힘없이 그의 손에 잡혀 벽을 쿵쿵 찧어 댔다. 그는 울다시피 괴성을 질러댔다. 그가 괴성을 지르는 소리가 너무 커서, 기숙사를 관리하는 분이 문 앞까지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차분하게 괜찮다고 했다. 10분 뒤, 관리자분이 억지로 문을 따로 들어왔다. 다시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애인은 잠시 언성이 높아져서 죄송하다고, 우리 화해했다고, 그렇지 않느냐고 나에게 동의를 구했고, 나는 울먹거리며 괜찮다고, 돌아가시라고, 난 안전하다고, 아무일 없다고 안심시켜드렸다. 무거운 문이 닫히자, 그는 내 팔을 터질 듯 잡으며 그르렁거렸다. 너만 아니었어도,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화를 낼 일이 없잖아, 그러게 왜 화를 나게 해, 너만 아니었어도, 너만 아니었어도. 더 이상 큰 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는 내 살갖을 깨물고 목을 졸랐다. 난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는 직접 선배에게 연락해서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욕을 하고는 번호를 지워버렸다. 용서를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널 사랑해서 용서를 해 준다고 했다. 나는 잠기는 목소리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그 때 이후 자해를 시작했다. 애인을 두고 바람을 핀 너는 죽어야 해. 스스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자책했다. 애인을 남겨두고 죽을 순 없으니, 스스로 벌을 주는 편을 택했다. 자해를 하면 아프면서도 죄가 씻겨지는 기분이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맞았고,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그와 떨어져 있을 땐, 언제나 불안했다. 그가 몰래 날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지 언제나 주위를 살피곤 했다. 둘만 있을 때, 그는 가끔 그 때 얘기를 하며 불 같이 화를 내곤 했다. 화가 날 때면 내 목을 졸랐고, 온 몸에 이빨 자국을 남겼다. 머리가 벽에 부딪혀 큰 소리가 나도, 더 이상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런 벌을 받아야만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떨 땐 그가 때려주는 게 좋았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의 화가 풀릴 것 같았으니까. 맞을 때면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눈을 감고 한참을 버텼다. 한참을 버티다 보면 섹스를 요구했다. 자고 일어나면 기숙사 바닥엔 언제나 뽑힌 머리카락이 한 가득이었다.
그와 완전히 헤어진 건, 그가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맹세하고, 그가 졸업하고 취업을 한 후,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살게 되고, 그가 내 동기들과 가지는 술자리를 뒤엎고, 내가 헤어지자는 말에 새벽 3시에 본가에 찾아와 부모님을 깨워서는 내가 어떻게 본인에게 그럴 수 있냐고 하소연을 하고, 아버지는 그를 달래느라 애쓰고, 한참을 얘기하다 그렇게 안녕을 고했다. 2년 반만의 자유였다.
하지만 그에게 벗어났다고 해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솔직해지면 솔직해질 수록 남자들이 화를 내고 폭력을 쓴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