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언니 1. 소문난 자두 맛집, 의성 맑은터농장 황정미 농민

알다여성 농민농사

이달의 언니 1. 소문난 자두 맛집, 의성 맑은터농장 황정미 농민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협동조합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언니’를 소개합니다. 토종씨앗을 잇는 활동으로 씨앗의 권리를 찾고, 농생태학을 배우고 실천하며 자신과 주변 생태계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 주변을 살리는 언니들의 농사 이야기를 나눕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생산자는 매년 빛깔과 향기로 언니네텃밭 여름을 화려하게 열어주는 자두(대석, 후무사) 생산자 황정미 언니입니다.


우리가 촌에 들어오니까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소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일 소면서 거름을 만든다’면서. 자신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거름은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농사의 밑바탕이다….
의성 맑은터농장에서 갓 수확한 자두를 포장하는 여성농민 황정미 언니

언니네텃밭에서 자두를 선보이는 ‘맑은터농장’ 황정미 언니에게 농부가 자신의 농사를 자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여성농민들이 그렇듯, 결혼 후 ‘귀농이 소원’이라는 남편과 함께 그의 고향인 경상북도 의성군에 자리 잡게된 정미 언니. 고향에 돌아온 아들과 며느리가 농사를 짓겠다 하자 ,정미 언니의 시어머니는 5촌 아주머니의 씨 좋은 소 한 마리를 구해 선물해 주셨답니다.

그렇게 농사를 시작한지 딱 20년, 그 소의 자손이 번성해 40마리로 늘었고 문전옥답도 얻었습니다. 문전옥답은 집 가까이 있는 기름진 논을 뜻합니다. 지금 정미언니네 논에는 마늘 수확을 마친 뒤 이모작으로 기르는 벼가 자라는 중입니다. 집 주변으로 펼쳐진 자두밭에는 빨갛게 익은 대석과 아직은 풋열매인 후무사가 맺혀 있습니다.

일러스트 이민

끝까지 소를 지키며 이어온
적정규모 농사

농부가 자신의 농사를 주체적으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황정미 언니와 함께 농사짓는 남편 김상권 농민은 ‘적정규모를 유지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농사의 규모가 커지면 산업폐기물이 많이 나와요. 또 일손이 많이 필요하니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게 되죠. 지금 시골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 농사가 이뤄지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정말 일손이 많이 필요한 며칠만 빼면 우리 두 사람이 모든 농사를 책임지고, 우리가 지을 수 있는 규모로만 농사를 지어요. 농촌이 가족농이 되고, 가족이 후계를 만드는 가족농 중심의 적당한 농사를 짓는 것이 주체적이고 노동자와 환경을 착취하지 않을 수 있는 농사라 생각합니다.”
의성 맑은터농장에서 농사의 근간이 되는 소. 널찍한 공간에 40마리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며 기르는 소는 사료와 함께 직접 농사지은 짚을 먹고 자라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데 큰 공을 세우는 존재입니다. © 맑은터농장

“소가 곧 농사의 근간”이라던 마을 어르신들 마저 하나 둘 소를 팔고, 한 가지 작물로 돌아선 지금에도 끝까지 소를 지키는 정미 언니네. 퇴비를 따로 사다 쓰지 않고, 소의 배설물을 잘 숙성시켜 자가퇴비를 만드는 것은 곧 주체적인 농사를 지키는 농부의 자부심입니다. 그 퇴비가 다시 마늘과 논, 자두밭에 순환되기 때문에 농사에 투입하기 위해 큰 돈을 들여 사거나 버릴 것이 별로 없습니다. 볏짚은 소에게 주고, 마늘도 주아에서 씨마늘을 직접 길러 심습니다.

맑은터농장에서 직접 만드는 자가퇴비

퇴비가 많이 남아 이웃들에게 나눠 주는 정미 언니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대신 소에게 널찍한 자리를 내어주고 미생물을 우사 바닥에 뿌려 줍니다. 30도가 넘는 여름에도 냄새 없이 소를 기르고 퇴비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이 어떻게 좋은 땅을 구하겠어요. 자갈땅, 물 없는 곳, 배수 안 되는 데…. 그런 곳만 구하게 되니 제대로 된 농사가 될 수가 없죠.
그런데 퇴비를 스스로 만들어 넣고 가꾸니까 땅이 부들부들해지면서 농사가 잘 되더라고요. 그 시간이 5년 정도 걸렸어요.
동네 사람들이 소를 키워 퇴비를 넣으면서도 유박비료도 따로 사다 쓰더라고요.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심 불안했어요. 유박비료에는 성장촉진제가 들어가서 작물이 더 굵다고 하니 우리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작물이 굵어져도 우리 것처럼 야물지는 않더라고요. 마늘만 봐도 우리는 지금 수확한 마늘이 내년 6월까지도 그대로 있더라고요.”

유기농이 아닌 관행농이라도 꼭 필요한 최소한의 방제만 합니다. 그래서 정미언니네 밭에는 다양한 농생물들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10년 동안 꾸준히 정미 언니네 마늘과 자두를 찾는 소비자 회원이 많습니다. 평소 직거래를 통해 농산물을 주로 구입한다는 언니네텃밭의 한 소비자 회원도 “자두와 마늘이 유명한 의성지역의 농산물을 많이 접해 봤지만, 이 자두는 박스를 열 때 나오는 향부터 행복하게 만든다”며 매년 정미 언니네 자두만 기다릴 정도니까요.

잘 숙성된 퇴비로 농사 지으니 쉽게 무르지 않고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정미 언니네 자두. 질 좋은 농산물은 직거래 방식으로 전해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유통과정이 복잡할수록 농산물이 상·하차 하는 일이 잦아 많이 흔들리고, 유통과정에서만 며칠 동안 이동하는 일도 종종 생기니까요. 그래서 농장에서 갓 수확한 농산물을 택배를 거쳐 다음날 가정으로 배송하는 직거래 방식이 농산물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당일수확 당일배송이 원칙인 맑은터농장 대석자두
대석은 가장 처음에 나오는 품종이라 병충해에 강해요. 가장 처음 나오는 자두라 농약을 가장 덜 칠 수 있는 품종이기도 합니다. 자두가 늦을수록 농약을 더 많이 칠 수 밖에 없죠. 자두는 정말 예민한 작물이에요. 적과(열매섞기)나 전정(가지치기)을 조금만 늦게 해도 표시가 나요. 과실을 굵게 키우는 것도 쉽지 않고요.
대석과 함께 후무사를 재배하는 정미언니. 후무사는 대석이 끝날 무렵 익는다.
후무사는 자두라고 하면 가장 대표되는 맛 좋고 굵은 품종이에요. 의성은 산이 얕아 일조량도 많고, 날씨도 막 뜨겁다가 춥고 기온차가 심하니까 과일이 맛있어요. 그래서 과일, 채소 할 것 없이 안 되는 게 없죠.

봄의 자두밭에는 민들레가 한창입니다. ©맑은터농장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 딸 효은이와 자두 선별 작업을 하는 맑은터농장 가족.
가족농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정규모가 농사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자두 나무 전지에 세상 이치가 다 담겨 있어요. 이를테면 원 가지에 가지 두 개를 서로 붙여 놓으면 서로 세력싸움을 벌여 둘 다 잘 안 돼요. 나무가 물 흐르듯 전지가 안 되고, 부주지(원 가지에서 분리된 두번째 가지)가 더 굵어도 안 되죠. 수형 조절을 못하면 나무는 계속 도태돼요. 나무를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도 보며 섬세하게 작업해야 과실이 굵어져요.

농민회 때문에
더 열심히 지은 농사

황정미 언니와 그의 남편 김상권 농민. 부부는 농사도, 농민회 활동도 늘 함께 하는 동료이자 동지이기도 합니다. ©맑은터농장

정미 언니네 부부는 열혈 농민운동가이기도 합니다. 부부가 처음 만난 것도 대구의 시민사회활동 단체였다고 할만큼 지역 사회에도 관심이 많은 두 사람. 부부는 대구 페놀사건과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를 지역사회에서 목격하며 환경운동을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니 남편 김상권 농민의 관심은 자연히 귀농으로 옮겨졌죠. 두 사람은 귀농해서도 자연스레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전국농민회총연맹에 가입해 지역 농민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상권 농민: 큰 뜻을 갖고 활동 했다기 보다는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전부 농민회를 했어요. 그래서 농민회에서 활동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죠. 아직도 기억에 남는게 2001년에 대구에서 뉴라운드 설명회가 있었어요. 처음엔 농민회가 저항하는 방식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조금 지나니까 내가 먼저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 (웃음)

정미 언니: 대구에서는 직장생활하며 시민운동을 했다면, 농민회 활동은 내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니까 더 절박하면서 격하게 하게 되더라고요. 또 우리가 귀농할 때도 동네에 나이 많은 어른들밖에 없었어요. 심지어 우리가 여기서 농사지은 지 20년 째인데 아직도 막내야. (웃음) 그런데 농민회에는 또래가 많았으니까 이웃보다 가슴을 터놓고 말했던 사람들이 바로 농민회 사람들이었죠.

보는 눈이 많은 농촌살이. 농촌 안에서 ‘농민회 활동을 하는 사람은 농사에 소홀하다’는 인식이 있어 농사를 조금만 게을리해도 마을에서는 뒷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더욱 열심히 해야했다는 정미 언니네. 일부러 마을 어른들에게 농사 짓는 법을 부지런히 묻고 열심히 농사 짓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잘 지어야 저 사람들을 끌고 가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농사 실력도 늘었고, 마늘값도 올랐어요. 아직도 농민회 활동에 대해선 편견이 많지만, 우리가 그런 활동을 한 혜택을 자신들도 조금은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고요.”

정미 언니의 꿈은
여전히 농민

우리 동네는 모두 관행농으로 농사지어요. 그래서 우리도 자연스레 따라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언니네텃밭을 만나면서 제초제를 안 치고, 생태교육 받고 나가면서 풀을 안 뽑고 깎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참 아쉽더라고요. 우리가 처음부터 친환경 그룹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년 가까이 여기서 관행농을 했으니 우리만 친환경으로 전환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요.

농생태학을 강조하는 언니네텃밭을 만나고 관행농 틀에서 벗어나기까지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는 정미 언니. 달달한 맛과 향을 풍기는 과수농사의 특성상 봄에 황을 치고, 꽃피기 전에 석회브로드액과 살균제, 살충제를 뿌릴 수 밖에 없는 고충이 있습니다. 황과 석회브로드 액을 적기에 뿌려야 병충해의 50%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방제만 하고 있습니다. 대신 제초제를 쓰지 않고 제초기로 풀을 한 번씩 깎아주는 것으로 언니의 농사도 차츰 변하고 있습니다.

자두는 농민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어려운 과일입니다. 키우는 과정도 예민해 전정, 적과 같은 시기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조금만 놓쳐버려도 열매에서 금방 티가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문제인 건 수분이 많아 사과처럼 저장할 수도 없어 모두가 동시에 출하할 수 밖에 없는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고, 물건에 따라 가격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죠.

“자두가 물량이 많을 땐 공판장에서 ‘오지 마라’ 그래요. 그럼 진짜 자두가 갈 데가 없어요. 생산량이 많고 공판장 숫자가 적으면 그 피해는 농민이 봐야 하죠. 상인들은 상차비, 하차비, 공판 수수료를 받는데 우리처럼 물량이 적은 곳은 잘 받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러다보니 물량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자두 딸 때는 새벽 4시부터 자두를 따야 하는데 가격이 너무 형편 없어서 의욕이 안 생길 때도 많아요. 그래도 우리는 언니네텃밭이 있어서 가장 좋은 자두는 1순위로 언니네텃밭 소비자들에게 보내고 남는 것만 공판장에 보내니 전보다 낫죠.” 

정미 언니의 소원은 생산되는 모든 자두를 언니네텃밭에서 직거래 하는 것입니다. 농부의 사정을 이해하는 소비자와 직거래한다면 앞으로 언니네텃밭이 추구하는 농생태학을 더 빠르게 추구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농생태학의 방식으로 과일을 기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생산량이 많이 떨어지니, 언니네텃밭과 함께하는 직거래 방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믿습니다.

제초제를 치면 풀이 누렇게 죽어가요. 그걸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불편한데 풀을 깎아놓으니 마음이 좋아지더라고요.

예전에는 여자는 제초기를 못 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동네에 어떤 형님이 일본에서 만든 여성용 관리기를 쓰더라고요. 나도 그때부터 관리기를 쓰고 있어요. 하지만 제초를 한 번 하고나면 팔이랑 근육이 계속 아파서 그것도 고민이에요. 여자가 기계를 계속 만지는 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옆에서 정미 언니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 김상권 농민은 다정하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이 앞으로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어. 당신이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그런 일 말야.” 김상권 농민의 말은 즉, 농사일이 워낙 고되니 평생을 전업농으로 살아온 마을의 여성들이 환갑만 넘어도 몸에 병이 나 대부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는 자식들도 많이 컸으니 농사는 가족들 먹을만큼만 취미로 하면서 아내만큼은 몸이 상하지 않는 다른 일을 하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미 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농사 말고 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사실은 다른 밭에 생태 텃밭을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어요. 실험삼아 유기농으로 기르는 밭에는 우리집 마늘도 심었는데 약 한 번 안 쳐도 잘 되더라고요.
우리가 20년을 관행으로 농사지으며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그랬지만, 이제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우리도 농사 짓는 걸 바꿔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늘에는 아직 제초제를 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언니네텃밭에 낼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제는 언니네텃밭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농사를 가장 잘 짓는게 내가 정말 잘 하고 싶은 일이에요. (남편을 보며) 우리도 이제 오십이니까 농사의 방식을 새롭게 고민할 때가 되었어. 그렇지 여보?”

“그래? 그럼 나도 우리 자두를 지금보다 더 최상의 맛으로 만들고 싶어. 그렇다고 우리가 늘그막까지 농사를 지으면 안 돼. 우리라도 농지를 후계농들에게 줘야지. 한 사람이 100마지기, 1000마지기 땅을 쥐고 기계로 전부 농사를 지어버리면 앞으로 농촌에 들어오는 사람이 더 없을테니까. 우리라도 땅을 갖고 있지 말자고.”

이심이면 전심. 언제나 함께하며 자신보다는 서로를, 나아가 공동체를 배려하는 두 농민 활동가 부부. 맑은터농장의 자두는 언제나 부부의 다정한 대화와 함께 성글고 있습니다.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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