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가슴이 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마음에 제동이 걸리는 영화가 있다. <패터슨>이 바로 그런 영화다. 소시민의 적당히 요동치는 일상 속에서 그들이 평범한 예술을 실천하는 이야기.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 패터슨 시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며 시를 쓰는 패터슨의 이야기다. 그의 일주일을 따라가며 만나는 도시의 정감 있는 모습과 패터슨의 일상적인 언어로 쓰인 시는 별거 아닌 것들의 아름다움을 되짚어 준다.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나의 일상을 마저 아름답게 보게 하는 콩깍지에 쓰인 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든 삶이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금세 일상으로 돌아왔고 패터슨의 아내 로라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영화 기저에 깔린 묘한 느낌의 정체는 로라를 깔보는 듯한 태도였다. 일상의 예술가 패터슨을 조명하면서 같은 예술가인 로라는 왜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가? 로라는 왜 패터슨에게 보이는 관심을 돌려받지 못하는가? 왜 로라를 철없는 아내로 비추는가?
할리우드식의 죽고 못 사는 연인은 아니지만, 이 둘에게 사랑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일찍 출근하기 위해 먼저 일어나는 패터슨은 항상 로라에게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방을 나선다. 둘은 마주 보고 저녁을 함께하며 그는 로라의 말에 귀 기울여준다. 성냥갑의 디자인 같은 작지만 아름다운 디테일에 함께 감탄할 수 있는 커플. 로라는 어쩌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며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이 사람을 사랑하기로 선택해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라가 패터슨에게 들이는 정성은 종종 돌아오지 않는다. 로라는 그가 쓴 아름다운 시를 세상에 선보여야 한다고, 잃어버릴지 모르니 복사라도 해놓으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로라 언젠간 컵케이크 가게를 차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래서 토요일에 주말 시장에 가서 컵케이크를 팔아 볼 거라는 것을,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다던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로라가 집안 곳곳에 그림을 그려 넣고 옷을 만들고 기타를 배우고자 할 때, 생면부지의 빨래방 랩퍼에게는 보낸 반짝이는 응원의 눈길을 로라에겐 보내지 않는다. 로라에게 당신의 그림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신이 꿈에서 쌍둥이가 나왔다고 했잖아. 그래서인지 오늘 버스를 몰면서 쌍둥이 승객들을 봤어." 이 말 정도는 건네줄 수 있지 않았나.
시인 패터슨에게 평범한 아내를 붙여줄 순 없었기에 로라도 예술가가 되게 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로라는 철없는 몽상가가 되었다. 로라가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어 기타를 사고 싶다고 할 때 미적지근한 남편의 반응은 로라를 집안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철없는 아내로 보이게 한다. 또한 로라는 저녁으로 레시피도 없이 자기 멋대로 만들어 목이 막히는 파이를 내놓는 아내가 돼버린다. 마치 로라가 집에서 생각없이 그림만 그리며 노는 것처럼. 로라가 매일 해야 하는 가사노동, 패터슨이 좋아하는 재료로 저녁을 차리고 그 점심 도시락도 매일 싸주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로라가 만들어낸 흑백 무늬로 가득한 집은 그 자체로 예술이지만, 패터슨은 로라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지하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마치 로라의 예술이 그저 현란한 벽지인 것처럼, 그것에 압도당해 피신한 것처럼.
아무도 진심으로 응원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나는 로라가 주말 시장에서 컵케이크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286달러를 벌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신난 로라가 저녁에 외출하자고 해서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 집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이는 또다시 묘하게 로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영화는 패터슨에게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 오늘은 나가서 저녁도 먹고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오자.”라는 대사를 주지 않은 걸까. 이 세계에서 떨어진 외계인 같은 존재. 그저 독특한 세트 같은 존재. 패터슨과 다를 바 없는 예술가인데 그의 노력과 그의 재능에는 모두가 무관심한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로라를 생각할수록 이 영화가 더 잘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두 명의 일상의 예술가를 담은 영화. 둘의 애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그들의 예술과 일상을 영위해나가는 영화. 그 쪽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