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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내가 코르셋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진 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지적하지 않는 한, 내 얼굴과 몸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지 꽤 됐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지(다이어트 선언을 하고 음식을 적게 먹거나, 살빼는 약을 먹거나, 간헐적 단식을 하지 않은지)도 3년 쯤 되어가고, 투블럭을 한 후 일상에서 화장을 하지 않은 것도 2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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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제 3자의 눈으로 보이는 나를 마주했을 때, 그리고 그 상태가 내 생각과 다를 때 예상치 못한 혼란을 겪었다. 유튜브에 올라가는 영상에 등장하기로 한 게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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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등장하기로 마음먹는 데에도 물론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래도 결심한 후에 촬영하기 전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 후에 영상 속 내 모습을 확인하자 순식간에 자기혐오가 물밀듯 밀려왔다. 갑자기 내 외모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신경쓰이기 시작하고, 그게 나에 대한 평가나 나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게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 바보같은 생각인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 감정은 따라와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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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을 실천하기 이전의 나는 예쁨에 대한 욕망만큼 마르고 싶은 욕망이 컸다. 다이어트가 코르셋임을 인지하기 전에 나에게 마른 것이 곧 예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통통한 볼살과 튼실한 허벅지, 볼록한 뱃살을 가진 나는 오랫동안 마르고 싶어서 노력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버리기까지도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다 버려내지 못한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다. 마르지 않은 내 모습을 보는 건 아직도 나에게 상처가 되는데, 그게 상처가 된다는 게 답답하다. 오랜시간 왜 너는 충분히 날씬하지 못하냐고 혼났던 시간들 때문일까, 사회적인 여성상이 날씬한 여성이라서일까, 미디어 속 멋진 여자들도 다 날씬해서일까, 이미 답을 알고있다고 생각했던 질문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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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은 것처럼 동그란 얼굴과 작고 얇은 입술, 축 쳐진 입꼬리와 팔자주름, 부은듯한 쌍커플, 그리고 겹쳐진 두개의 턱과 눈밑의 다크써클...
한편으로는 이런 내 모습이기에 더 많이 보여지고 더 자주 전시되어서 다른 여성들의 외모코르셋을 부수는 데 기여하고, 사회적 여성상을 부수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내 맘속 깊숙한 곳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외모지상주의적인 기울어진 생각이 나 자신을 혐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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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려보면, 탈코르셋을 하기 전에는 이런 자기혐오의 순간을 더 자주 많이 마주했다. '나 왜 이렇게 못생겼지? 왜 이렇게 뚱뚱하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번씩 되풀이했다. 그렇게 내 외모에 불만이 쌓이면, 다이어트를 다시 다짐했고 화장품을 새로 구매하거나 피부과에 갔으며 새로운 옷을 샀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냥 이런 내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미 마주하고 인정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과정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그날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고 자꾸 목이 탔다. 속이 안좋고 컨디션도 너무 나빠졌다. 자꾸 토할 것 같았다. 이제 다시는 겪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식이장애의 증상들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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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이 싫어지는 동시에, 이걸 싫어하는 내가 또 너무 싫었다.
그게 더 괴로웠는지도 모른다. 단단히 얽혀버린 자기혐오 같다. 아직 충분히 강하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고, 이 글을 공개할지 말지를 오래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주위 페미니스트들과 쉽게 나눌 수 없고 조심스러웠다. 내 이런 생각이 동료의 사기를 저하하게 될까봐, 탈코를 조롱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0.1g이라도 무게를 실어주게 될까봐, 그리고 너무 부끄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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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너무 답답해서 쓴다. 탈코르셋이 끝이 아니라는 말을 쓰기 위해 쓴다. 탈코르셋을 한 사람들도 이렇게 아직도 몸부림치면서 탈코르셋을 유지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싶어 쓴다. 이런 내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더 단단한 내가 되어있길 바라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