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은 끝이 아니다 #3 겨털

핀치 타래페미니즘탈코르셋일기

탈코르셋은 끝이 아니다 #3 겨털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고 견디는 법, 아직도 고민중

깨비짱나


내가 탈코르셋을 한 순서를 요약하자면, 다음 4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

  1. 와이어 브래지어, 색조화장(립 제외), 매니큐어, 하이힐, 렌즈, 긴 머리 등 많이 불편한 코르셋
  2. 단발머리 (->숏컷->투블럭)
  3. 치마, 반바지, 브라렛, 비침 있는 옷, 피부화장, 립 컬러, 액세서리(귀걸이, 반지, 팔찌, 목걸이), 다이어트, 향수 등 비교적 일상적인 코르셋
  4. 제모 (...특히 겨드랑이)

🤸‍♂️

1번을 잃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탈코르셋 운동 초반에 탈브라와 탈메이크업을 했다. 원래 편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화장을 잘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워낙 건성에다가 예민한 피부라 화장을 하면 곧잘 따가웠고, 건조해서 하얗게 각질이 뜨는 걸 해결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매번 미리 화장을 안해서 약속장소 가는 버스에서 열심히 두들겼으니, 그 화장실력이 오죽했으랴.. 매니큐어와 페디큐어도 바를 땐 재밌지만, 바르기만 하면 손발이 차가워지고 불편했기에 자주 못했다. 그리고 키가 작으니 나중에 힐을 신어야 한다는 말에 중학생 때부터 굽있는 구두로 발을 훈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하이힐은 몇년을 신어도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급한 성격에 자꾸 발을 삐끗하여 애꿎은 발목 인대만 몇번 파열됐다. 이렇듯 1번 코르셋들은 모두 나에게 고통을 주던 코르셋들이기 때문에 '코르셋' 개념을 알자마자 바로 벗어낼 수 있었다.

🤸‍♂️

그후 몇달 후 투블럭을 했고 3번 코르셋을 벗을 수 있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잃고 나자, (대부분의 탈코러가 그렇듯) 탈코르셋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전에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코르셋만 벗었다면, 투블럭 후에는 '사회적 여성성을 강화하는 모든 코르셋'을 구별해내고 버려낼 수 있었다.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모든 옷차림과 매일매일 시간을 뺏어가던 피부화장, 액세서리, 향수 등을 그제서야 일상에서 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다이어트도 잃게 되었다. 내 행동을 제약하는 옷을 버리니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옷을 입고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슬슬 작은 체구에 갇혀있지 않고, 운동을 통해 벌크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싹트기 시작했다.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위한 운동도 시작했다.

🤸‍♂️

그러나 대부분의 코르셋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잃기 어려웠던 건 바로 '제모'였다. 

팔, 다리, 얼굴 등은 몇년 간 '제모 안히고 버티기 - 못참고 제모해버림 - 다시 버티기'를 반복한 끝에, 이제는 털이 있어도 맘이 많이 불편하지 않다. 아직도 신경이 쓰이는 건 바로 겨드랑이 털...! 복싱장에서나 헬스장에서 반팔을 입고 팔을 들어올리는 운동(덤벨 레터럴레이즈, 숄더프레스 등)을 할 때마다 '앗 겨털 보이면 어떡하지' 하면서 최대한 사람이 양쪽에 없는 곳으로 가서 운동을 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내 겨털을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내 겨털을 보는 게 견딜 수가 없다. 고백하건데, 겨털은 아마 내가 가장 마지막에 벗을 코르셋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몇번의 실패(다시 제모...) 끝에 이제는 겨드랑이털을 밀지 않고 버티고 있지만, 대신 민소매 옷을 못입는다. 내 겨털은 아빠와 남호메와 똑같이 아주 까맣고 양도 많고 길게 나는데 이걸 그대로 다른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오소소 돋고 털이 쭈삣 설 정도로 싫다.  사실 탈코 전에 제모를 할 때에도 (충분히 얇지 않은) 팔뚝이 내보이는 게 싫어서 민소매를 자주 입지 않았고 그나마 아주 더울 때 가끔 민소매원피스 입는 게 다였는데, 이젠 원피스도 안입으니 옷장에 민소매 옷을 찾기 힘들기도 하다.

🤸‍♂️

사실 윗 문단의 내용은 다 핑계다. 내가 집에서는 겨털을 안민 채로 민소매를 입고 다닐 수 있지만 밖에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건, 내가 코르셋을 다 못벗었기 때문이다! 새삼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한국에서 해변가나 수영장에 여자들이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은 채로 벌러덩 누워있어도 괜찮은 그런 세상이 올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 

혹시 겨드랑이털도 코르셋인가(난 보기싫어서 미는 거지 여자라서 미는 거 아닌데 등) 싶은 사람을 위해 덧붙이자면.. 난 20대 초반에 겨털 레이저 제모에 쓴 돈만 60만원은 족히 넘는 것 같은데, 당시 친구들과 더 싸고 덜 아픈 겨털 레이저 제모하는 것을 서로 소개해주곤 했다. 내가 아는 남자 중에선 겨털을 없애기 위해 몇십만원 내고 아픈 레이저제모를 받는 이가 없으니, 이는 여성에만 부여된 과제이며 코르셋이다. 게다가 이전에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에서 겨드랑이 털을 그린 게 신성모독이라고 비판받았단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자연 상태의 여성의 신체에는 겨드랑이 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체모를 없는 것 취급하는 문화 자체가 남상중심적 사고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

누구 겨드랑이털 탈코하는 귤팁 아는 사람 좀 알려주세요~!

위 그림은 겨털 탈코를 다짐하며 그려본 그림✍

SERIES

탈코르셋은 끝이 아니다

더 많은 타래 만나기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3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상속
장례도 끝났고 삼오제(삼우제)도 끝났다. 49재의 첫 칠일 오전, 나는 일하던 도중 이제 식을 시작한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창가로 나와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부디 엄마의 영혼이 존재해서 젊고 건강할 때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실컷 다니고 있거나, 혹은 그 생명의 끝을 끝으로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었기를. 삼오제까지 끝나면 문상 와 준 분들께 문자나 전화로 감사 인사를 해도 좋..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주접

플레잉 카드

헤테트

#플레잉카드 #트럼프카드
버드 트럼프Bird Trump 원고를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까마득한 언젠가 텀블벅에서 후원한 플레잉 카드 (=트럼프 카드) ! 원래 쟉고 소듕한 조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맹금류를 제외한 새를 무서워하는 편) 이건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냅다 후원해버렸다. 그 뒤로 잊고 살았는데 오늘 도착. 실물로 보니 과거의 나를 매우 칭찬해주고 싶다.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없어, 세상에. 하다못해 쓸데없이 많이 들어있는 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