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운동은 계륵같은 존재다.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운동을 해야 하긴 하는데 움직이긴 싫고...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다시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운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풍문으로 듣길 필라테스라는 운동이 참 좋다던데... 그럼 해야지...
대신 이번엔 회사에서 함께할 크루를 모집하기로 했다. 탕비실에 A4용지를 붙였다.
건강한 몸을 원하십니까? 필라테스 멤버를 모집합니다. (최대 6명) 학원은 회사 근처이고, 가격은 합의 보고 오겠습니다. 메신저로 연락 주세요.
그렇게 어벤져스가 결성됐다. 그게 나와 필라테스의 첫 만남이었다.
# 그 당시의 몸 상태
1) 하체 부종이 굉장히 심한 편 (본투비)
2) 손발이 매우 차다
3) 코어가 없다
4) 근력이 없다
5) 골반이 틀어졌다
6) 운동하기 싫어한다
그냥 총체적 난국이라고 쓰는 게 더 나았겠다.
# 학원 정하기
한 수업당 최대 인원이 몇 명인지 파악하는 게 좋다. 나는 최대 5명인 반의 수업을 들었다. 5명 정도가 제일 적당한 것 같다. (그 이상이 되면 선생님 한 분이 모두를 한 번에 봐주기 힘든 문제가 있음.)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지만, 1:1 수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캐딜락, 체어 등은 없었고 리포머라는 기구와 소도구만 사용하여 운동했다.
# 소도구
소도구의 종류는 짐볼(공), 보수(짐볼을 반으로 잘라놓은 느낌), 밴드, 폼롤러 등이 있다. 나는 보수가 제일 싫었다.
보수에 올라서서 하는 런지와 스쿼트는 나태 지옥에 갇힌 기분이다. 평지에서도 힘든 운동을 중심도 잡기 힘든 곳에서 해야 한다니...
# 첫 수업
첫 수업은 무조건 1:1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호흡법과 몸을 쓰는 방법이 달라서 따로 배워야 한다고. 그래서 5만원을 따로 내고 첫수업을 들었다.
팔 힘이 너무 없어서 살면서 팔굽혀펴기를 0개 기록한 사람인데, 이 날 호랑이 선생님을 만나 바들바들 떨면서 5개 정도를 했다.
# 호흡법
필라테스는 코로 깊게 숨을 들이 쉬고 입으로 내쉬면서 갈비뼈를 닫는다는 느낌으로 호흡을 한다.
첫 수업때 선생님이 “갈비뼈 닫으세요!” 라고 하셨는데 닫는 방법을 몰라서 “어떻게 닫죠..?” 하고 뚝딱였다. 양쪽으로 벌어진 갈비뼈를 좁게 모아준다는 느낌(?)으로 숨을 최대한 빼내면 된다. 처음에는 몰라서 흉통에 손을 대고 숨을 쉬었다.
# 분절
나는 필라테스를 하면서 분절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척추를 하나하나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필라테스에서 거의 모든 운동이 분절을 베이스로 한다.
팔을 뻗은채로 몸을 숙였다가 복부에 힘을 주고 허리, 등, 날개뼈, 어깨, 목, 머리 순서로 올라오는데 머리가 먼저 올라와서 혼났던 날들이 많다.
# 근력과 코어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근력이 있으면 유연성이 좀 부족하고, 유연성이 있으면 근력이 좀 부족한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나와 함께한 동료와 내 모습이었다.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동작은 연체동물같은 내게 제격이었지만 동료는 고문이었다고 했다.
반대로 근력이 필요한 동작을 할 때, 나는 다시 나태 지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강사 바이 강사지만 내가 만났던 강사분들은 코어 운동을 굉장히 많이 가르쳤다. 운동 끝나고 집에 오는길에 "오늘 정말 복근 찢었다" 할 정도였다. 초반에는 코어가 너무 없어서 복근 운동을 하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렸다. 코어가 부족한 사람들은 처음에 운동할 때 그렇다고 했다.
# 허리 통증
건강하려고 시작했는데 허리가 아프다니. 운동할 때 호흡이 무너지거나 힘을 주지 말아야 하는 곳에 집중하니까 허리가 아프기도 했다. 원래 요통을 가진 사람들이 잘못 운동을 하면 큰일나겠구나 싶었다.
#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필라테스를 하면서 살이 굉장히 많이 빠졌다. 성인이 된 이후로 몸이 가장 가벼웠던 날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부종도 덜해졌고 상하체의 밸런스도 얼추 맞춰졌다.
근력 운동에 가깝기 때문에 단백질만 잘 먹어줘도 근손실이 덜했겠지만, 나는 늘 맥주를 마셔서(...) 근육량이 잘 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 사라진 4명
5명으로 시작했던 필라테스 크루는 결국 나밖에 남지 않았다. 결의에 차 있었던 그룹 채팅방은 고독한 필라테스 방이 되어버렸다.
그릿... 인생은 외로운거야.
# 6개월 후
필라테스는 내가 가장 오랫동안 했던 최초의 운동이다. (반년이나 한 취미생활을 유지하다니. 대견해!)
잘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잘 하게 되어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선생님한테 에이스 소리까지 들었었다.
게다가 필라테스를 하며 내가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초 체력도 길렀겠다, 다른 운동을 배워보고 싶어 미련 없이 그만 두었다.
내게 필라테스는 언제 시작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되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말
"빠진 목 집어 넣고 누가 머리를 위에서 잡아 당긴다는 느낌으로 자세 유지하세요!" (쓰자 마자 목을 집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