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적당히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딱 하나 변한게 있다면 눈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는 내가 정말 눈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누군가 나에 대해 험담한 것을 전해 들어도, 교수님이 "이게 재밌냐?" 며 네 작품은 구리다고 상처를 줄 때도, 왕복 4시간 통학을 할 때도 울지 않았다. 이런 내가 허벌 눈물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슬픈 영화를 보거나 마음이 찡해지는 것들을 볼 때 눈물이 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예를 들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 빙봉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우니까. 그런데 그게 아닌 경우들이 있다.
한 번은 전 회사 워크샵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순에 팀을 이루어 대화를 하며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가 속한 팀의 주제는 '자신의 고민'이었다. 흠. 뭐가 있지. 공감하기 힘든 류의 업무적인 고민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정도 눈치는 있는 사람이어서 스스로에게 정말 감사했다.) 뭐가 있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요즘 들어 눈물이 많아진 게 생각났다.
"저는 요즘 눈물이 많아진 게 고민이에요." "왜?" 라는 물음에 눈물이 났다. 눈치 있다고 자부했는데 눈물 덕분에 갑분싸가 됐다. 당시에 그렇게 힘든 시기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되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동료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가방에서 침착하게 휴지를 꺼냈다. 눈물 수도꼭지를 개방하기 위해 준비했던 건 절대 아니다.
"또 이래요. 바보같네. 가끔 이런 제가 싫을 때가 있어요." 라고 했더니 "참는 것 보다 나은 것 같아요." 내지는 공감이 된다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동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타 팀 동료가 "그런 모습도 그릿이니까요. 보듬어 주세요." 라는 위로 섞인 조언을 해주었다.
'요즘 어때?' 라는 물음에 대답을 하다가 눈물이 흐른 적도 있다. 그 때도 마찬가지로 나 왜 울지? 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뭐가 됐든 힘든 점이 하나 쯤은 있었다. 미리 감지하지 못했던 것 뿐. 워크샵 때도 어딘가 곪은 곳이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기억할 수 없지만.)
이런 비슷한 대화를 나누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나는 상황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몇 안되는 나의 지인들이다. 그들은 내가 울고 적당히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곤 했다. 그리고 현재 어떤 것이 내 눈물과 관련이 있는지, 만약 힘들었다면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등을 물어봐 주었다.
처음에는 그 과정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마치 나선형 계단의 어둠속으로 걸음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라는 대답을 고장난 시계처럼 반복했지만,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니 내가 왜 울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감사한 분들이다. 지금은 그 때처럼 자주 볼 수 없어 나 혼자 이 과정을 가끔 반복한다. 물론 이 때도 허벌 눈물샘인 건 불변이지만 그 눈물이 어디서 오는가를 찾는 건 심적으로 꽤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내가 요즘 가장 답답한 건 억울한 상황이나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 눈물이 앞선다는 거다. 누군가가 내 노력을 부정하는 말을 한다거나, 나를 화나게 해서 싸우는 도중에 눈물이 차올라 말을 제대로 못 한 적이 여러 번이다. 그 상황에서 적당한 말을 하지 못하면 집에 와서 잠을 설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공감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눈물이 날 때 얘기하면 사람만 우스워진다. 말 좀 하려고 하면 목구멍을 누가 탁 하고 막는 것처럼 목소리도 이상해진다. 아니 (끅) 내가 (습습습) ... 마치 초등학교 때 남자애들이 교실 뒷편 사물함 쪽에서 악을 쓰고 싸우던 것처럼. 애석하게도 이것을 완벽하게 멈출 해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얼마 전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별 것이 아닐 수가 없는데 말이다. 기분이 붉으락푸르락 했지만 이 상태로 얘기를 해봤자 또 초딩 남자애가 될 것 같아서 '당황스럽네요' 라고 한 마디만 했다. 찝찝하지만 그 자리에서 사과를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한결 나았다. (나중에 메일로 내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렸다. 상황은 잘 마무리됐다.)
좀 나아지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눈물을 참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방법을 찾아야만 해!
앞으로 내가 해 볼 것들
1. (유명한) 여보세요 - 평정심 유지
2. 상황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기
- 말을 귓등으로 들으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에 하나하나 새겨서 미리 상처 받지 말라는 의미이다.
3. 머릿속을 비우기
- 2번과 비슷한데 상황을 맞딱뜨렸을 때 스스로에게 '왜?' 라는 질문을 하지 말자. 그냥 가나다를 읊으며 눈물 날 것 같은 기분을 참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보자.
미래의 내가 같은 상황에서 눈물샘 원천봉쇄에 성공하면 다시 글을 쓸 것이다. 2020년의 목표에 하나를 더 추가시켜야겠다. 억울할 때 눈물 참기. 그러고 나서 나중에 혼자 울기.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