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부자의 유동현금 활용기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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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부자의 유동현금 활용기 (A)

팔 다리 동기화도 안 되면서 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그릿

 때는 2016년 겨울 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 그릿은 이렇게 앉아서만 살다간 건강을 잃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운동 하셔야죠 / 운동이 뭔데요
운동 하셔야죠 / 운동이 뭔데요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바빠서 도무지 운동을 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2호선을 뚫고 출퇴근 하는 것만으로 모든 HP를 소진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운동을 뒷전으로 여겼다. 그 결과 본투비 부종러의 다리는 날이 갈수록 부어갔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결심했다. 얼마 되지 않는 연봉이지만 돈을 쪼개서 건강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리 덧붙이자면 나는 어떤 일이던 간에 '재미있는것' 이면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겐 운동이 재미 없는 존재였다. 이 정신머리로는 운동을 평생 시작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일단 '재미있는 운동을 찾자' 라는 목표를 세웠다. 



 [안녕하세요, 가격 문의좀 드리려고 하는데요. ] [주 3회 진행되시구요 한 달로 진행하실 경우엔 15만원이세요]

 20만원 이상으로는 부담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15만원이라니. 나는 퇴근길에 바로 학원에 들러 8시 K-POP 수업을 신청했다.

 월, 수, 금요일에 진행되며 지금은 진도를 나간 상황이라 중간에 배우기 힘들테니 다음주부터 나오라고 하길래 그러겠노라 했다.



# 대망의 월요일

 딱 중학교 입학할 때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데 머쓱한 것이... 게다가 댄스학원을 몇 달 동안 다닐 지 모를 일이었기에 수업에서 신을 재즈화도 사지 않았다. 나는 몇 안되는 고독한 양말 댄서였다. 일단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 몸풀기

 몸풀기부터 시작했다. 어딜가나 그렇듯 고인물 레벨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여기도 그랬다. 다들 몸풀기 안무에 능숙했다. 나는 안무 지속 시간을 몰라서 혼자 한 박자씩 늦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이 박수 두 번을 치면 자세를 바꾸는 거였는데, 너무 구석에 있어서 소리를 못 들었다.

  노래가 끝나서 몸풀기도 끝난 줄 알았다. 스쿼트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요가 매트를 가져와서 눕기 시작했다. 눈치껏 나도 누웠다. 그리고 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 off'에 맞춰 크런치를 했다. 스트레칭도 했다. 시계를 보니 몸풀기로 30분을 썼더라.

 그녀를 좋아하지만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뱃가죽이 당기는 것만 같다.


# 선생님의 선곡

 몸풀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댄스 수업이 시작됐다. 케이팝 반이라고 하길래 유행하는 노래의 안무를 배울 줄 알았다. 근데 선생님은 이 주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니 캐롤을 준비했다고 하셨다. 

 스피커에서는 엔싱크의 'merry christmas and happy holidays' 가 흘러나왔다. 피아노 간주를 들으니 90년대로 회귀한 기분이 들었다. 


# 팔다리가 같이 안 움직여요

 세미 충격이었던 엔싱크 노래에 맞춰 선생님의 맞춤 안무를 배웠다. 일단 팔 동작을 배우고 거기에 다리 동작을 더했는데 나는 이 때 깨달았다. 내 팔다리는 동기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주는 처음이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몇 주 동안이나 그랬다. 내 자리는 맨 뒷줄 고정이었다.


# 앞줄 진출

  학원에 다닌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다. AOA의 Excuse me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무가 쉽고 노래가 빠르지 않아서 익히기 수월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박자에 맞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수요일에 앞줄로 오라고 손짓했다. 흑흑. 정말요? 이 노래는 내가 유일하게 1절을 완벽하게 소화한 곡이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 근데 그만 뒀어요

 앞줄로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려운 노래들이 휘몰아쳐서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박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선생님의 눈치도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볼까 신경도 쓰였다. 

 게다가 수업은 8시였다. 내가 회사에서 조금 늦게 퇴근하고 동네에 오면 수업이 이미 시작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아예 몸풀기 시간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수업에 참석했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내게 "그렇게 몸풀기 할 때 안 들어오면 몸 다쳐요. 다치면 우리는 책임 안 져요." 라고 했다. 다칠 수 있는 부분은 이해했지만 책임 져달라고 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요.

 결정적인 이유엔 선생님의 불편한 언행도 있었다. 굳이 여성 회원들에게 살을 빼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제일 많이 했다. (선생님은 남성이었다.)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과 살 고나리 콜라보는 내가 그만두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나는 평가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수업이었던 카라의 Step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퇴장했다.


 나는 잘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가 종종 있어서 춤을 외우지 못하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업도 아닌데. 재밌자고 시작한 일이 스트레스로 이어지면 그만두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을 덜어야 취미 생활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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