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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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

<성노동> 카테고리의 최신 기사

창녀됨의 기록: 6. '존엄'해 진다는 것

이로아

존엄과 'kibun' 의 문제에 대해서 딱 하룻밤. 이상한 사람들이 나에게 이상한 등급을 매기고 이상하게 소비(안)하는 이상한 나라에 나는 딱 하룻밤 있었다. 그 때만큼은 그 나라의 법칙이 나를 재단하는 유일한 기준이었다. 나는 홍등 아래를 새벽 내내 혼자 지키면서 내 가치없음에 화장이 지워지도록 서럽게 울다가 옆 가건물의 매우 빈곤해 보이는 잠자리에 웅크려 잠이 들었다. 다행히 전날 받은 8만원이 있었다. 늦은 오전 쯤에 일어나자마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짐을 챙겨 탈출했다. 거기가 경기도 어디쯤이라는 것은,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탈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집도 절도 없었지만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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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됨의 기록: 5. 세상에 섹스할 만한 남자 따윈 없다

이로아

슬슬 돈을 벌어야 등록금 납입 기한을 맞출 수 있을 무렵에 나는 최소한의 짐만 챙겨 무작정 상경했다. 그때까지는 나는 내 가치에 대해 잘 몰랐고 성노동 환경은 더더욱 몰랐다. 떼돈을 벌지는 않아도 좋으니 일단 보상이 적은 쪽부터 (그래서 덜 예뻐도 될 것 같은 쪽부터) 시작해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물론 돈을 적게 받는 쪽이 만만할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강남권 모집공고는 다 버리고 굳이 외곽지역을 골랐다. 하지만 면접을 학교 근처 동네에서 봤을 뿐 야밤에 차를 타고 두시간이나 더 가야 하는 뒷골목 쪽방촌에서 일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면접을 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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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됨의 기록: 4. 조건 갖추기

이로아

나는 여자가 아니라 ‘여자’가 되었다 나에게는 우울증은 물론이고 인격장애의 징후도 몇 가지 있었는데, 부모님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정신과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우리집은 보수적인 편이다. 내가 아픈 것은 사실이었지만, 제때 졸업을 못 하고 부모님의 자녀 양성 계획에 크나큰 차질을 유발한 것은 모두 내 나약함의 죄였다. 어머니는 내 병세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려고 뭐든 해줄 작정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해결책은 성형수술, 그리고 다이어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눈을 좀 했다. 어쩌면 안검하수여서 그 치료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피부에 칼을 대는 것은 무섭지 않았는데, 몸에서 뭘 빼내거나 몸에 뭘 집어넣는 것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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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됨의 기록: 3. 나는 여자가 아니었다

이로아

나는 급히 채팅으로 몇몇 남자들을 만나야 했다. 원조교제나 조건만남이 한창 문제가 될 때였다. 프로필에 적힌 내 나이와 반반하게 찍힌 사진만 보고 그들은 내게 용돈을 약속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창녀가 되지말라고 아버지가 했던 협박이 나를 창녀로 만든 것처럼, 된장녀가 되지 말라던 인터넷의 무수한 글들이 내게 된장녀의 삶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다. 된장녀가 되지 말라고 호통치면서 합당한 근거를 대지 못한다는 것은, 그냥 단지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된장녀 앞에서 호구가 될 것이고 그것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졸렬한 패배선언으로만 보였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들을, ‘세상’을 직면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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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됨의 기록: 2. 나는 빨리 '걸레'가 되어야 했다

이로아

중간에 내가 화를 내서 멈추기는 했지만 미수/기수로 따진다면 기수였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이것이 강간이 될 수 없음을 그때조차 너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부모로부터조차 ‘남자를 밝힌다고’ 낙인찍힌 년이니까. 여기 와서 자라고 한 게 나였으니까. 세상은 내 편이 아니었고, 나와는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고, 나는 그 거대한 대상을 설득할 능력이 없었다. 몸은 일주일 동안 아팠지만 신고는 물론 안 했다. 게다가 나는 놀랍게도, 조금쯤은 그래, 이렇게 한 번 섹스를 해 주면—정복당해 주면—놈의 이해할 수 없는 연애감정도 사그라지지 않을까 체념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날 이후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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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됨의 기록: 1. 그것은 이미 내 곁에 있었다

이로아

학비를 위해 바텐더를 하고 있다는 명문대생의 고백은 기이한 자기변호로 둘러싸여 있었다. 예전에 나온 고대신문의 기사도 그랬지만, 최근에 서울대 대나무숲에서 본 글은 더더욱 그랬다. ‘학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실제로 몸을 팔지는 않았다.’ 그 변명이 구구할 정도로 길었다. 마음먹고 '창녀됨'을 고백하면서, 그나마 눈 뜨고 '고백' 할 수 있는 부분은 실제로 섹스 서비스를 하지 않은 부분까지라니 아이러니했다. 그러면서도 그 아래 달리는 수많은 악플들을 보니 뭐라도 내세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창녀임을 고백한 사례들은 여럿 있다. 얼마전에는 ‪ #‎나는_창녀다 ‬ 해시태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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