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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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피해오던 현장취재를 충동적으로 자원하고 마음 속에서는 은근히 취소되기를, 연기되기를 바라는 비이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변 없이, 정해진 날이 되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현장에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카메라 여러 대와 함께 맨바닥에 앉아 정신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는 기자들이 보였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그 앞에 섰다. 가정폭력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한 뒤 작성된 성명문을 읽고 정해진 구호를 외쳤다. 중간 중간 발언자의 발언이 있었다. 그 중에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생존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당사자들도 있었다. 길을 지나던 행인들은 무슨 일인지 흘끗거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는 내가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단신으로만 마주치던 장면에 내가 작게나마 일부가 된 순간과 그 현장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기자단 활동을 정말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겉돌던 마음이 잠깐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1편에 이어 여기까지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 다음부터는 기자단이 절친만큼 편해졌다거나 이 일을 계기로 엄청난 활동가가 되었다는 등의 극적인 결말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후로도 나는 기자단 모임에서 매번 배가 아팠고, 내 글을 보여줄 때는 창피해서 땀이 났다.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실천하는 똑똑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르르 녹아 없어지곤 했다. 내 방은 너무 안락했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게으른 나는 그걸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다.
기자단 활동을 하기 전의 나와 하고 난 다음의 나는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의미 없는 괴로움은 아니였다. 기자단 활동을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몰라도 긴 시간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동체,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늘 채식주의자를 따로 배려하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또한 이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을 보며 세상에는 수많은 틈들이 있고, 거기서 누군가는 늘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역량은 없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기자단으로 활동했던 시간이 나라는 사람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내가 보고 듣는 세상을 한층 다양한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활동 기간에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득해 후회도 종종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잃았다면 나는 여전히 좁은 세상 속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나'에게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일단 인정하고 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나는 이제 모름을 방패나 핑계 삼지 않고, 발판으로 삼아서 다시 걸어가려 한다. 새로이 듣게 된 수많은 목소리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