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배가 아프던 어느 모임에서(2)

핀치 타래글쓰기페미니즘

늘 배가 아프던 어느 모임에서(2)

내가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는 늘 말하고 있음을

은강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thepin.ch/@silverriver/efcee919


늘 피해오던 현장취재를 충동적으로 자원하고 마음 속에서는 은근히 취소되기를, 연기되기를 바라는 비이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변 없이, 정해진 날이 되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현장에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카메라 여러 대와 함께 맨바닥에 앉아 정신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는 기자들이 보였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현수막을 들고 그 앞에 섰다. 가정폭력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한 뒤 작성된 성명문을 읽고 정해진 구호를 외쳤다. 중간 중간 발언자의 발언이 있었다. 그 중에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생존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당사자들도 있었다. 길을 지나던 행인들은 무슨 일인지 흘끗거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는 내가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단신으로만 마주치던 장면에 내가 작게나마 일부가 된 순간과 그 현장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기자단 활동을 정말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겉돌던 마음이 잠깐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1편에 이어 여기까지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 다음부터는 기자단이 절친만큼 편해졌다거나 이 일을 계기로 엄청난 활동가가 되었다는 등의 극적인 결말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후로도 나는 기자단 모임에서 매번 배가 아팠고, 내 글을 보여줄 때는 창피해서 땀이 났다.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실천하는 똑똑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르르 녹아 없어지곤 했다. 내 방은 너무 안락했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게으른 나는 그걸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다.


기자단 활동을 하기 전의 나와 하고 난 다음의 나는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의미 없는 괴로움은 아니였다. 기자단 활동을 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몰라도 긴 시간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동체,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늘 채식주의자를 따로 배려하는 공동체를 경험했다. 또한 이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다양한 행사와 캠페인을 보며 세상에는 수많은 틈들이 있고, 거기서 누군가는 늘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역량은 없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기자단으로 활동했던 시간이 나라는 사람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내가 보고 듣는 세상을 한층 다양한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활동 기간에는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득해 후회도 종종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시도도 하지 잃았다면 나는 여전히 좁은 세상 속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나'에게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건 괴로운 일이지만, 일단 인정하고 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나는 이제 모름을 방패나 핑계 삼지 않고, 발판으로 삼아서 다시 걸어가려 한다. 새로이 듣게 된 수많은 목소리를 기억하며. 

SERIES

부끄러움의 역사

더 많은 타래 만나기

보장 중에 보장, 내 자리 보장!

이운

#방송 #여성
나는 땡땡이다. 아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 팟캐스트는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로,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하여 해결해 준다는 취지하에 만들어진 방송이다. 그리고 ‘땡땡이’는 이 취지에 맞게, 사연자의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다 만들어진 애칭이다. 비밀보장 73회에서..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병원이 다녀왔다

..

낙타

정신병원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번엔 둘다 끝까지 치료하고 싶다.....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말 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4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상속인 조회 서비스 조회 완료 후 한 달 정도는 은행과 보험 정리에만 매달렸다. 사실 지점이 많이 없는 곳은 5개월 여 뒤에 정리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등을 정리했고 건강보험공단, 연금공단, 주민센터 등을 방문했다. 상속인 조회 서비스에 나온 내역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철 해 두고 정리될 때마다 표시해두고 어떻게 처리했는지(현금수령인지 계좌이체인지 등)를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나중에 정리하기 편하다. 주민..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