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여러 분야에서 확산되던 미투 운동을 보며 나는 분노했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용기가 부족하던 차에, 마침 한 여성단체에서 기자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발견해 바로 지원했다. 발표일 오후가 될 때까지 연락이 없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어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약 보름 뒤, 나는 낯선 사람들과 여성 인권과 글쓰기라는 키워드로 묶여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닉네임을 정했다. 상대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단정짓지 않는 수평적인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 페미니즘 관련 주제가 나오면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늘 답답함을 느껴왔기에 여기서라면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은 한 달도 되지 않아 깨졌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 주변에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고, 그걸로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없었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꽤 도취된 상태였다. 하지만 활동을 계속할수록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인지 실감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겉핥기 페미니스트인 나와는 달리 기자단에는 여러 페미니즘 이슈에 자신만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 현장에서 활동해본 분들도 꽤 있었다. 덕분에 정기 모임에 나갈 때마다 불편함에 배가 아파왔다. 이 사람들의 유려하고 논리적이면서도 결코 그것을 뽐내지 않는 언어 앞에서 한없이 빈곤한 언어를 가진 내가 부끄러웠다.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모임에서 나는 내 밑천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현장 취재를 가능하면 피해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실내에서 하는 교육을 취재하는 일이나 단체의 소식을 전하는 일은 괜찮았는데 시위나 행사를 취재하는 일은 막연하게 두려웠다. 그런 자리에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비웃음 당할 것 같았다.
그래도 마냥 피할 수는 없었기에 어느 날은 용기 있게 현장 취재에 자원을 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