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늘 무언가를 글로 쓰려는 나를 발견한다. 핀치에서 '타래' 베타테스터 모집 소식을 봤을 때도 자연스럽게 신청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청폼을 작성하고 제출 버튼을 누른 다음날 활동 안내 공지를 받았다. 어서 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왜?
지금껏 여러 글을 써오면서 글쓰기에 거창한 이유를 붙여오곤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는 이유는 그냥 심심할 때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라고 별 고민 없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글쓰기가 그런 활동이 아니길 바랐다. 좀 더 특별하고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리고 키보드를 치는 손에 힘을 줘가면서 이 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잔뜩 힘이 들어간 손과 어깨의 긴장을 풀고 돌아보면, 세상에는 그렇게 일부러 힘을 줘 글쓰기의 이유를 찾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는, 써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비하면 내 글쓰기는 삶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못하는 사람의 변명이나 사족이라 느껴지곤 한다. 나는 엄청난 걸 말하고 싶다기보다 그저 작은 칭찬이 필요할 뿐이고 그 수단이 글쓰기인지도 모른다고 마음 속의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록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써도 괜찮은 사람'인지 의문이 들곤 한다. 책으로 따지만 얇은 교본 같은 나는 쓰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며칠 동안 생각을 거듭하며 처음 쓰기로 한 내용과는 조금 다른 걸 쓰기로 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거창한 이유나 의미는 덜 의식하되 좀 더 가볍고 솔직하게,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타래'처럼 말이다. 'tmi 대잔치'가 될 수도 있고 '안물안궁'인 이야기가 쏟아질 수도 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부끄러움과 고통의 역사'쯤이 되려나. 어쩌면 또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난 이걸 하고 싶다.
아무렇게나 뭉쳐놓은 실이나 노끈에서 어떤 규칙이나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타래만이 가득한 사람도 있고,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또 쓴다. 이건 나만의 타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