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부터 허리디스크와 구부정한 어깨, 틀어진 골반으로 고생해 오던 것이 익숙해지다 못해 몇번의 일상 사고를 통해 인대를 여기저기 다친 후 아예 비관적이 되었다. 운동과 친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내 몸이 조금의 자극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엉덩이와 다리에 붙은 지방은 '살찌고 못생긴 볼품없는 몸'의 나를 질책하기에 딱 좋은 이유가 됐고 거울을 볼 때마다 자꾸만 거울 속 내 몸이 자라는 것처럼 보였다. 거액의 돈과 시간을 들여 몸을 가꿀 수 있는 중산층 계급 또한 아니니 한국사회가 그토록 희망으로 불러 마지 않던 청년에 속해있었음에도, 재력과 재능 모두 타고 나지 않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 몸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작년 초, 헬스 트레이너인 짝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헬스장을 운영하는 짝지와 데이트 겸 교정을 받고 틈틈이 근력운동을 시작한 것이 내 생애 첫 '자발적 운동'이었다. 놀랍게도, 교정을 받는 과정에서 넘어져 다친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근육이 유연한 몸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늘 입버릇처럼 몸이 너무 뻣뻣하고 굳어서 안돼, 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현대인이 다들 그런 것과 같은 정도의 운동 부족이었던 것 뿐 정확한 자세로 스트레칭을 하고 약해진 인대를 잡아주기 위한 근력 키우기에 집중하니 조금씩 등이 펴졌다. 몸이 펴지니 27년간 구겨져 있었던 마음도 따라 펴지기 시작했다. 하체비만이 아니라 붓기가 잘 안 빠지고 있었던 거였고 근육의 모양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동작을 배울 때는 숨이 차고 눈앞이 하얗게 될 정도로 힘들었는데 어느새 몸이 뻐근할때마다 1세트씩 복근을 접고 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머신의 무게를 10kg에서 15kg, 20kg로 한 단계씩 올릴 때는 희열마저 느껴졌다.
못하는 것,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해봐서 몰랐던 것이었다는 걸 덤벨을 들 때마다 느낀다. 여중, 여고 체육 시간에 공 하나, 선 하나, 라켓 하나만 달랑 받고 방치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렸을 때 "여자는 처녀막이 찢어질 수 있으니 자전거 타면 안된다"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뛰어도 몇 초 후에 다시 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걸 훨씬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운동하는 몸은 일상에서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각종 무례와 해로운 것들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학교 체력장에서 실시하는 오래달리기는 정말 죽을 만큼 싫고 힘들었는데,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오래달리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년 봄, 도시를 가로지르는 마라톤 대회에도 처음으로 참가해 10km 코스를 달리고 걸으며 마음껏 땀을 흘렸다.
올 한 해도 꾸준히 운동을 할 계획이다. 이제는 며칠 움직이지 않으면 목, 어깨, 다리가 금세 저리고 등과 엉덩이 근육이 제발 뜨겁게 땀 흘려달라고 아우성이다. 바쁜 작업 때문에, 또는 고질적인 손목 통증 때문에 쉬고 있노라면 점점 마음이 안달나기 시작한다. 잘 늙고 싶다는 삶의 목표를 지금부터 실천하고 있다는 든든함, 해코지하는 것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몸과 마음의 방어력이 나를 이렇게 바뀌게 했다. 내일도 어김없이 이 자유와 되찾은지 얼마 되지 않은 권리를 만끽하러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