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술 작가이자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작년 한 해는 무난하고 무사히 지낸 덕에, 귀엽게 반복되는 숫자 두 개만으로도 올 한 해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인터넷에서 혼자 뒤적거려 보았던 토정비결도 꽤 괜찮았고 말이죠. 따뜻한 계절이 오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스케줄을 잡고 설레던 때가 엊그제였는데요. 아, 그런데 지금은 하필 '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네요.
2020년 2월의 마지막 날 현재 대구는 전염병 아포칼립스의 한가운데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그렇게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마트에 물건은 충분합니다. 산책도 하고 단골가게 앞을 지나가며 안부를 묻거나 데이트도 하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호복 입은 의료진, 구급차가 자주 지나간다던가 폐쇄된 공간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이 보건수칙을 잘 지키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계, 교육, 돌봄 마비로 인한 피해가 동일하진 않지만 모두가 겪고 있으니 서로 돕자는 생각을 매일 확인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 일주일동안 대구, TK 소식을 다룬 뉴스들 중에서 한국 사회가 지방을 대하는 갖가지 시선들이 날 것으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는 건 왜일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 통제되지 않는 상황, 자신의 신념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면 계몽적 태도를 가지기 쉽습니다. 먼 거리에 둔 저 대상은 관찰하고 가르치며 변화시켜야 할 존재이지만 나와 동등한 위치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지잡'은 서울 사람들이 가끔 생각날 때 소비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을 내놓으면서도 상향표준화된 서울의 일상을 침범하지 않아야 하죠. 지방도시 안에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당장 봉쇄하라는 말에 둘러싸이는 이유입니다. 이데올로기나 바이러스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앞에서 벌어지는 어리석은 일, 또 그것을 넘어서는 시민 간의 연대는 어디를 가나 똑같은데 말이죠.
그러니까 대구를 정말 고담시로 만들 생각을 가진 악인이 아니라면 언론도 댓글 다는 사람들도 손가락을 좀 조심히 놀려주었으면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포털 사이트 1위에 수도권 봉쇄가 뜨게 만드는 운동이라도 할까 싶었으니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