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반지

핀치 타래일기

언니의 반지

2020. 04. 09. 木.

기모 연



늦은 저녁까지 야근을 한 언니를 마중나갔다. 만나기로 약속한 놀이터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 봤다. 맞은 편 대로에서 언니가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언니는 반지를 잃어버렸다.  

내게 손을 흔들 때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졌다고 한다. 내가 뽐내며 걸어오는 리듬에 맞춰 손을 열심히 흔드느라 그랬다고. 우리는 휴대폰 후레시를 켜고 한참 동안 어두운 도로를 들여다 봤다.  

"어저께 너한테 주려고 했던 그 반지야." 반지를 못 찾고 돌아가는 길에 언니가 말했다. 손가락에 잘 맞지도 않고 반지를 잘 끼지도 않아서 받지 않았었다. 우리 둘은 "진작 받을 걸", "손을 살살 흔들걸", "겸손하게 걸어올걸"하고 후회를 주고 받다가, "다음 달에 월급 받아서 두 개 살거야"하는 언니의 다짐을 끝으로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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