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유럽여행에 갔던 때, 나는 영원한 타자일 것이란 걸 느꼈다.
탈조선을 꿈꾸던 나는 한국이 아닌 ‘서양’에 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샤를드골 공항에 내리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자마자 이곳에서 나는 가장 하위인 ‘아시안 여성’이란 것을 깨달았다. 여행을 하면서 이 세상에 내가 안착할 곳은 아무 데에도 없다는 걸 느꼈다. 한국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고 유럽에 계속 남아있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시간은 흘렀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20분 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1분 동안 카카오톡 사진이 날아가기를 기다리던 나는 사라졌다.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한 10분 정도 뒤에 한국의 속도에 재빠르게 다시 적응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한동안 우울과 허무감에 뒤섞인 채로 이 세상에 어떤 것도 가치있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 괴로워했다.
그 여행 이후 죽기 전에 유럽에 또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 유럽에 와 있다.
어쩌다보니 유럽에 왔고 어쩌다보니 이곳에서 전보다 훨씬 길게 있게 되었고(이번에는 약 6개월동안 유럽에 머무를 예정이다), 어쩌다보니 우리를 환대해주는 곳에서 1주일간 묵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내가 계속 타자라는 것을 느낀다는 점이다. 나는 영어도 독일어도 잘하지 못한다. 이 집 사람들과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럴듯한 문장을 완성해도 이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담겨있는 내용이 너무나도 한국적이기 때문에 그러리라. 나는 계속 한국 사람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한국사람만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개그를 던지고, 한국사람만 보는 눈치를 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에 가면 완벽하게 어울리는가?
대학을 다니기 전에 알게 된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날 때마다,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나는 작년부터 채식을 하게 되었고, 무급의 인턴이나 실습같은 것에 (아직도) 화가 나고,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한국 사람들의 무례함에 당황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묘하게 흐르는 기류를 읽기 어렵고, 원하는 것을 언어화 할 때 나는 ‘센 사람’이 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도 전달하기 어려운 것을 어떻게 말하지 않고서 전한단 말인가?
누군가에게 꼭 들어맞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 안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부유하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