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년간의 기억, 우울

핀치 타래정신건강우울증

지난 반년간의 기억, 우울

우울증, 그것에 대하여

서울안개구리

숨죽여 울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이 긴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움직이는 것도,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다행히 나에겐 좋은 친구들이 많았고, 무너져가고 있는 내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서 나를 일으켜주었다. ​  

'네가 곧 죽을 것 같았어.'  

'병원에 가, 제발.' ​  

3개월 쯤 병원에도 가지 않고 버티고 나니 도저히 내가 나에게 질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 갔다. 30분을 내리 울었다.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말들을 웅얼거리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나왔다. 약을 받았고, 이후 우는 일은 없어졌다. 감정도 일정 선을 유지했다. ​  

'우울증이래. 약을 받아왔어.' ​  

말했듯, 나의 친구들은 좋은 사람들이라 내 곁에 아주 가까이 모여주었다. 사실은 자신도 그렇다며, 힘들었겠다며, 너 너무 열심히 살 때부터 알아봤다며,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지지해주었다. ​

아직도 내가 우울증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는 게 아닐까.

이젠 생산적인 일을 폭발적으로 다시 해야되는 게 아닐까.

조바심을 내는 것도 전부 참을성 있게 다독여준다.  ​

그러니까, 힘든 사람들 모두 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 병원에 가자.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대나무숲이 하나 생기는 것이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평범한 내과' 같은 분위기라 당황스러울 정도니까 걱정 마시고.  ​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 나는 이제 앞으로의 시간은 적어도 우느라 웅크린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된다.

서울안개구리의 최신 글

더 많은 타래 만나기

4. Mit Partnerin

여성 파트너와 함께

맥주-

#여성서사 #퀴어
여성 파트너와 함께 이성애 규범과 그 역할에 익숙해진 내가, 동성애를 하기 위한 일련의 역할들과 그 수행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실용적- 불필요한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한-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여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사회에서 ‘여성적’ 이라고 해석하는 복장을 하고 있기를 좋아한다. 하늘하늘하고,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 있고, 패턴이 화려한 옷들. 재미있는 것은 패턴..

13. 대화하는 검도..?

상대의 반응을 보며 움직이라는 말

이소리소

#검도 #운동
스스로를 돌이켜보기에, 다수의 취향을 좋아하는 데 소질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돌이나 예능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체온이 2~3도는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대화에 섞일 적당한 말이 뭐 있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뭐라도 이야깃거리를 던져보지만 진심이 없어서인지 어정쩡한 말만 튀어나온다. 결국 혼자 속으로 “난 만화가 더 좋아.."라며 돌아서는 식이다. 맛집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 어째 운동 취향도 마이너한 듯하고.....

오늘도 결국 살아냈다 1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은 사람의 기록

차오름

#심리 #우울
하필 이 시기에 고3으로 태어난 나는 ,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많이 불안해진 나는, 대견하게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 우울증과 공황발작이 시작된 건 중3. 하지만 부모는 어떤 말을 해도 정신과는 데려가주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20살이 되고 알바를 하면 첫 번째로 갈 장소를 정신과로 정한 이유이다. 부디 그때가 되면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면서. 부모는 우울증은 내가 의지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비건 페미 K-장녀 #1 가족의 생일

가족들과 외식은 다이나믹해지곤 한다

깨비짱나

#페미니즘 #비건
다음주 호적메이트의 생일이라고 이번주 일요일(오늘) 가족 외식을 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다양한 스트레스의 요인들이 물밀듯이 내 머리속을 장악했지만 너무 상냥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일요일에 시간이 되겠냐고 오랜만에 외식 하자고 너도 먹을 거 있는 데로 가자고 묻는 말에 못이겨 흔쾌히 알겠다고 해버린 지난주의 나를 불러다가 파이트 떠서 흠씬 패버리고 싶은 주말이다. 이 시국에 외식하러 가자는 모부도 이해 안가지..

말하지도 적지도 못한 순간들 -12

환자가 떠난 후 남은 딸이 할 일

beforeLafter

#죽음 #장례
끝났다. 사흘 간의 지옥같고 전쟁같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컴컴한 폭풍우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던 시간이 끝났다. 끝났다는 것이 식이 끝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절망스럽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했던, 60여년을 살았던 한 '사람'을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후루룩 종이 한 장으로 사망을 확인받고, 고인이 된 고인을 만 이틀만에 정리해 사람..

[제목없음] 일곱 번째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제목없음

#여성서사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참으로 어렵다. 나같은 경우에는 끊임없이 되물어봤다. 그리고 의심했다. '저 사람은 만나도 괜찮은걸까?' '내가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처음에는 설레기도 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연 내가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은걸까?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좋으니까로 결론이 난다. 좋은걸 어떡하나? 만나야..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