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은 아주 간간이 떠오른다.
내 경우, 공기와 분위기를 이미지로 기억하는 편이라 일부의 경우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 간혹 떠오르는 기억은 유치원을 다닐 즈음부터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다.
할머니 댁은 사는 집과 가까워서 엄마는 틈나는 대로 썬 플라자 앞 버스 정류장에서 114번 버스를 타고 신림동으로 향했다.
아주 처음 기억으로는 내가 어릴 때에도 버스 토큰을 쓰고 있었고 동생과 나는 그것을 자기가 내겠다고 아옹다옹했던 것이다.
하도 자주 다녔던지라 어딘가 도심으로 가는 버스는 노란색의 114밖에 없었던 것 같고 무슨 일이 생겨서 도망쳐야 한다면 이 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가야 했기에 신림동을 갈 때는 유난히 정신 차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이모 댁의 사촌 언니와 오빠, 큰 외삼촌 댁의 언니와 오빠 동생이 있었고 큰 외삼촌 쪽은 명절 이외에는 잘 보는 일이 없어서 평일이나 공휴일이 아닌 주말에 신림동에 가면 이모 댁 사촌들이 오나 하고 기다렸다. 외가댁은 가족이 많고 시끄러워서 내 기억에는 명절에 조치원(시댁)에 갔다가 엄마의 위로 공간인 신림동으로 꼭 가야 했기 때문에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밤에도 자지 않고 화투를 치는 모습이 제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저 아래로 거처를 옮긴 할머니는 지금도 찾아가면 하루 종일 내내 맛있는 것을 해 주시지만 그때도 우리는 쉬지 않고 먹었다. 엄마와 이모는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고, 그들의 자식인 우리는 정말 잘 먹었다. 그래서 주말에 엄마가 이모에게 전화해서 신림동에서 모이는 그 순간을 제일 좋아했다. 여름이면 옥상의 텃밭에서 상추랑 이것저것 많이 뜯어서 오래된 고무대야에 한가득 넣고 더위에도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찬물에 계속 씻고는 했다. 그리고 고기를 가져와 돗자리 펴고 구워 먹을 즈음이면 맞은편 성당에서 종이 울렸고, 동생과 나는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