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감정: 어떤 대상, 사람, 생각 따위에 대하여 동시에 대조적인 감정을 지니거나, 감정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혼란스러운 감정. 비슷한 말로 '모순 감정'이라고도 한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고.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고. 미워만 하다가 어느새 정이 들기도 하고. ...... 이런 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라면, 엄마를 미워하는 온전한 그 하나의 마음에 대해 작정하고 까보려는 나의 행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쨌든 엄마.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보니, 나는 엄마라는 이름보다 '딸'이라는 이름에 대해 더 큰 무게와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그의 딸. 그가 낳고 키운 딸.
지금 내가 힘든 건 엄마가 엄마이기 때문일까, 내가 그의 딸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러한 나의 기록이 후회로 남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몇 번쯤 망설이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엄마는 주변 평판이 좋은 편이다. (이 점 또한 나의 다짐을 방해하는 데 영향을 적잖이 끼쳤다.) 몇몇 가벼운 일화를 듣고 나면 모두들 "와, 너네 엄마 멋지다!" "나도 그렇게 늙고 싶어!" "건강하고 얼마나 좋아."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즐겨 다니는 문화센터나 동네 지인들 사이에서도 '멋쟁이'로 통하는 분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문화예술 다방면에 관심이 많으며, 박학다식한 편이고, 동시대 분들에 비해 동안이며 '대졸자'라는 프라이드도 높다.
엄마와 '가족'으로 얽히지 않았더라면, 내가 엄마를 다른 공간 다른 루트로 만났더라면, '와, 저렇게 나이 드는 분도 계시는구나.' 선망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나의 친구들처럼 나의 엄마를 범상치 않은 여성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너네 엄마는 뭔가 참 다르다. 자기 삶을 누리시잖아.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엄마에 관해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다. '자기 삶'을 꾸려 간다는 것, 그 하나로 나의 엄마는 주변인들에게 로망 그 자체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너무나 고상하고, 너무나 우아하며, 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잼 씨는 엄마가 꼭 친구 같아 좋겠어. 생각도 젊으시고, 같이 있기 얼마나 좋아요?
물론 이런 엄마를 자랑처럼 여긴 시절도 분명 있었다. 어릴 적 내가 본 친구들 엄마랑은 분명 달랐으니까. 그런데 그 다름의 차이가 언젠가부터 내게 의문을 던졌다.
왜 우리 엄마는 저렇게 혼자 튀지?
한때 고상하고 우아하고 '남과 다른' 모든 것이 프라이드였던 나의 엄마.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사업 실패와 힘든 생활로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살아온 것들을 하나둘 벗어 던져야 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어떠한 '고귀함'이 엄마를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경계에서 지켜내 주었던 것 같다. 엄마는 '보통'이 되기보다는 '보통'들을 미워하고 무시하면서 '난 다르거든'을 절실히 손에 쥐며 살아온 것이다.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너무나 징글징글한. 그 한 끗 차이는 결국 '가족'이기에, '엄마'와 '딸'이기에... 내 눈에 서서히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는지.
양가감정의 모순을 견뎌 내며 나는 계속 기록을 해보려는 중이다. 개발괴발 뒤죽박죽인 마음을 붙들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