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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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편해졌다

우아하고 고상한 나의 엄마는 어쩌다 혐오주의자가 되었나

이잼

  •   스물아홉, 결혼을 결심했다.

 사람 아니면 죽고 못 살 정도의 연애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러하기에 나는 결혼을 자연스레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같이 있으면 편하고, 함께하면 좋고, 나눌 이야기가 많고, 취향과 취미가 많이 닮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하루도 술을 드시지 않는 날이 없던 아빠와 달리 이 사람은 술은커녕 담배도 피지 않았다. 참으로 스탠다드하고, 심심할 만큼 모든 것이 스테레오타입이라는 점이 내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위안이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알뜰한 가풍도 나로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사람을 만났다고, 어쩌면 이런 것이야말로 남들이 말하는 운명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비로소 집을 떠날 수 있겠다고,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그 어떤 선택이든 지금 이대로의 나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말한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너 정말 결혼할 거야? 그 남자랑?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렸던 것 같다. 뭐가 궁금한 건데? 어차피 내 돈으로 내 힘으로 거의 다 준비해야 하는데 엄마 허락이 무슨 필요일까 싶기도 했다. 

  • 서른아홉,  2020년 2월 23일.

하아, 생각만으로도 낯간지럽고 낯뜨거운 10년 전 기억을 새삼스레 들춰보고 있다. 나의 엄마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며칠간 고민한 결과인데 이것참, 평범하지 그지없는 에피소드네. 게다가 시대착오적인 면도 없지 않잖아. 서른을 앞두고, 엄마를 벗어나, 결혼을 선택하는 삶이라니... 그렇다면 지금, 서른아홉의 나에게는 그렇다면 어떠한 대안들이 펼쳐지려나. 세상은 변화하고 세대는 달라져서 조금 더 용기 있고 다양한 선택과 결정과 대안을 마주할 수 있지만 여전히 '개인으로서의 나'에게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그럼에도 한순간의 어떤 선택은 잠깐의 가능성과 변화를 삶에 건네준다. 그 당시 결혼이 내게 그러했다. 살던 집은 '친정'이라는 이름으로 몸과 마음에서 금세 멀어졌다. 말 그대로 '신혼 시절'이었다. 엄마의 잔소리, 엄마의 투정, 엄마의 한숨 들로부터 벗어난 나는 지극히 자유롭고 너무나 평화로웠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는 워킹맘으로 지내면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되기 전까지는. 그때까지는 엄마가 내 눈에서 멀어져 마음도 편했던 시절이었다. 

서른넷부터 서른아홉까지, 지난 5년간 엄마는 나와 가까이 살며 나의 딸아이를 돌봐 주고 계신다. '희생'이나 '모성'이라는 이름의 이유는 결코 아니다. 엄마와 나는 서로 필요한 거래를 하는 사이인 셈이다. 엄마는 돈이 필요하고, 나는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왕이면 남보다 나으니까... 나는 기꺼이 다시 엄마를 매일같이 가까이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그리고 그것은 해가 갈수록 좀체 나아지질 않는다. (맞다, 이 글은 꾹꾹 눌러담아온 불편한 마음을 털어놓고자 시작한 뒤죽박죽한 하소연 파티인지도 모른다.)

나는 갈수록 나의 엄마가, 엄마라는 이름의 이 여성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내게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친정엄마’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의 -아니 나 개인에게도- 얼마나 든든한 자산이 되는가. 그것을 잘 아는 나는 늘 마음의 절반만큼을 반성과 자책과 속좁음에 할애하며 ‘더 나은 어른’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효녀라는 이름의 그들이 내게 건넨 다정한 위로를 곱씹으면서. 

엄마도 늙어가잖아. 평생 살아계실 것 같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니가 더 이해해야지.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니잖아. 너 지금 누구 덕에 편히 일해?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반성과 자각을 어쩌면 나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엄마는 그대로였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은 쪽으로 늙어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문제인가, 세상이 문제인가, 사람 자체가 문제인가. 이 똑같은 의문을 엄마에게 그리고 나에게 품으면서 엄마라는 사람의 여성을 생각하고, 그러면서 나를 생각했다. 

하아, 역시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려나... (닉네임을 이잼 말고 노잼으로 바꿨어야 했나?) 여하튼, 평범하지 그지없는 모녀일 수 있지만 그 모든 평범은 제각각 서로 다른 서사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나는, 잊히지 않는 엄마의 몇몇 모습을 기억하고 기록해 보려고 한다. 왜 나의 엄마는 갈수록 못나고 고집스럽고 세상 미운 것이 많은 혐오주의자가 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일상의 풍경과 목소리와 태도를 통해 내가 자라온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나의 딸이 함께하는 시간을 함께 생각하며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 본다. 행여 이 기록이 모이고 쌓여 어디서든 우연히 보게 될 때, 나의 엄마가 이 글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눈치챌 수 있을까? 글쎄. 

+ 스탠다드하고 스테레오타입의 사람과 함께한 10년에 대해서도 대나무숲이 필요하지만 우선 그쪽은 ‘할많하않’으로 치기로 한다. 고통의 글쓰기는 하나씩 해야 할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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