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결혼은 했지만, 가족은 만들지 않을 거야.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신고를 미룬 이유는 대출과 청약 때문이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둘이 합쳐 연봉 6,000만 원이 넘지 않아야 한다. 사회 초년생들이 결혼하면 가능하지만, 우리 같이 애매한 6~8년 차들은 둘이 합쳐 6000은 바로 넘는다. 차라리 혼자 연봉으로 디딤돌이나 버팀목 같은 대출은 받는 편이 나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인신고 하지 않고 법적으로 각자 1인 가구로 독립된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해도 느슨하게 룸메이트처럼 묶여있는 관계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묶여 개인을 포기하고 가족의 역할이 커지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딸로서의 어떠한 책임감을 강요받지 않았다. 내가 새벽 3시까지 집에 안 돌아 와도 우리 부모님은 일절 전화를 안 하신다. 그냥 푹 주무신다. "너 인생은 너 인생이지." 알아서 책임지고 살라고 나를 믿어주신다. 한 번 자유를 가지면 그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어서 결혼이 두려웠다. 다행히 남편은 나의 자유를 인정해주는 너무 멋진 남자였다. 아내의 역할보다는 한 사람으로서 일과 삶을 존중해주었다.
남편과 가족이 되지 않기 위한 가장 큰 전제조건은 아이가 없는 삶이다. 엄마라는 역할에 짓눌려 나를 잃어버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아이가 생기면 내 인생이 정말 끝날 것 같았다. 바무는 다행히 이런 나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었다. "그래. 우리가 행복한 것이 제일 중요해." 그의 말을 듣고 와락 안아버렸다.
결혼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가족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며느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힌다. 다행히 며느리의 역할도 최소한의 예의만 지킬 수 있게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생신, 명절 당일, 어버이날, 결혼기념일 날 연락 또는 밥을 먹는 것으로 심플하게 정리되었고, 정기적으로 전화를 드리거나 찾아뵙는 며느리 업무는 일절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시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느슨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시월드를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통해 많은 여성이 '아내' '며느리' '딸'같이 가족의 역활에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통해서 더 단단히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는 '룸메이트' 같은 남자를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