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둔 건 16살 때였다.
당시 내 주변에는 학교를 그만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하는 사람도 없었다.
중학교 때 ‘반강제’로 학교를 떠난 친구 3명을 떠올릴 수 있는 정도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은 여학생만 모여 있는 학급이었다. 친구 3명이 교무실로 불려 나가더니 몇 일 뒤 복도에 <강제 전학> 공고가 붙었다. 이유는 ‘흡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남학생들과 같이 하교 후에 담배를 피웠는데 여학생들에게만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애초에 흡연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강제 전학을 당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 즈음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점점 쌓여서 나는 견디듯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학교에서 체벌은 너무나 일상적이라는 것이었다. 수업이 시작할 때는 수업에 늦게 들어와서 맞고, 숙제를 못해와서 맞고, 수업 중에는 ‘딴짓’(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졸거나 낙서하기, 친구와 소근거리며 이야기하기 등)해서 맞고, 수업이 끝날 때는 쪽지시험에서 틀린 개수 대로 맞았다. 너희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사랑의 매’를 드는 교사들에게 화가 났다. 맞는 친구를 가만히 지켜봐야 할 때 무력감도 컸다.
교사의 체벌이 결코 사랑의 매가 아니라고 확신했던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때 교사가 부모 확인을 받아오라는 서명지를 못 가져온 친구가 있었다. 교사가 “부모님 사인 왜 안 받아왔니?”라고 묻자 친구가 ‘모르겠다’고 건성으로 답했다. 교사가 다시 “모르겠어? 왜 몰라? 언제 받아올거야?”라고 물었고 친구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교사가 순간 자기 감정에 못 이겨서 학생들 앞에서 그 친구 뺨을 때렸다.
교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 친구는 부모와 같이 살고 있지 않는 친구였다. 누군가를 때릴 수 있는 것은 권력이라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너희를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는 결국 내 말을 안 듣거나 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했을 때도 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체벌이 일상적이라는 사실과 달리 맞는다는 행위는 내게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맞는 순간의 굴욕감, 내가 인간으로 대해지지 않는다는 그 느낌은 정말 치욕적이다.
- 2편에 이어집니다.